한인 학생도 상담·편입·세부통계 지원 확대 기대
캘리포니아가 아시아·태평양계(AAPI)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대학을 주정부 차원에서 공식 지정하는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한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29일 마이크 퐁 주하원의원이 발의한 AB 2374에 서명했다.
이 법은 아시안계·하와이 원주민·태평양 도서계 학생들의 학업 성취와 대학생활을 지원하는 대학을 주정부가 공식 지정하는 제도다. 단순히 아시안 학생이 많이 재학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정되는 것이 아니라, 대학이 실제로 학생들의 졸업률과 재학 유지율을 높이고 학업 격차를 줄이기 위해 어떤 지원을 하는지를 계획과 자료로 제시해야 한다.
대상은 캘리포니아대학교와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캘리포니아 커뮤니티칼리지 각 캠퍼스와 법에서 정한 독립 고등교육기관이다. 이에 따라 UC 버클리와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산호세주립대, CSU 이스트베이, 베이 지역 커뮤니티칼리지들도 요건을 갖출 경우 신청할 수 있다. 다만 법 시행만으로 자동 지정되는 것은 아니며 각 대학이 별도로 신청해 심사를 받아야 한다.
기존 연방정부의 아태계 지원대학 제도는 해당 학생이 학부생의 일정 비율 이상을 차지하는지 등을 주요 기준으로 삼았다. 반면 캘리포니아의 새 제도는 특정 인종 학생이 몇 퍼센트 이상이어야 한다는 기준을 두지 않고, 학생들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고 학업 성과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췄다.
지정을 원하는 대학은 총장 등 최고 행정책임자가 아태계 학생의 성공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을 공식 확인해야 한다. 이어 앞으로 5년 동안 재학 유지율과 졸업률, 학위나 수료증 취득까지 걸리는 기간 등을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목표와 실행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전체 학생과 아태계 학생 사이에 학업 성과 격차가 있다면 이를 줄이기 위한 별도의 형평성 목표도 마련해야 한다. 4년제 대학은 최근 3개 학년도의 졸업률과 재학 유지율 등을 제출하고, 커뮤니티칼리지는 학위·수료증 취득 실적과 4년제 대학 편입률 등을 제시해야 한다.
대학 지정은 5년간 유효하며 갱신을 원하는 대학은 처음 제시했던 목표를 실제로 얼마나 달성했는지를 다시 평가받게 된다. 최근 5개 학년도의 학업 성과와 학생 지원 실적 등을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단순히 명칭만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구조다.
지원 범위도 학업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대학은 아시안계 학생 지원센터와 같은 전용 공간을 운영하거나 학업 보충 프로그램, 상담, 멘토링, 정신건강 지원, 진로 및 취업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는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저소득층이나 주거·식생활 문제를 겪는 학생들을 위한 기본생활 지원도 포함된다.
교수와 교직원이 학생들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관련 교육을 실시하는 방안도 포함된다. 아시안계 미국인의 역사와 민족학, 문화와 이민 경험 등을 다루는 강좌 확대도 대학이 마련하는 장기 계획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커뮤니티칼리지에서 CSU나 UC로 편입하는 학생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중요한 부분이다. 학부에서 대학원이나 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하는 과정까지 대학 시스템 간 협력을 강화해 학생들이 중간 단계에서 이탈하는 것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한인 학생과 학부모들이 특히 주목할 부분은 아시안계 내부의 서로 다른 민족집단을 세분화해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도록 한 점이다. 지금까지 대학 통계에서는 한국계와 중국계, 일본계, 필리핀계, 베트남계, 인도계 학생 등이 모두 ‘아시안’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이는 경우가 많았다.
AB 2374는 대학이 각 아시안계·하와이 원주민·태평양 도서계 하위 집단의 필요와 학업 격차를 파악할 수 있도록 세분화된 자료 수집과 분석을 전략계획에 포함하도록 했다. 이 제도가 제대로 시행되면 한인 학생들의 졸업률과 편입률, 재학 유지율, 상담 수요 등이 전체 아시안 학생 통계 속에 가려지는 문제를 줄일 수 있다.
다만 법이 모든 대학에 한국계 학생 통계를 반드시 별도로 공개하라고 규정한 것은 아니다. 학생 수가 적은 대학에서는 개인정보 보호 문제 등으로 특정 민족집단 자료를 외부에 공개하기 어려울 수도 있어 실제로 한인 학생 관련 자료가 어느 정도까지 공개될지는 각 대학의 시행계획을 지켜봐야 한다.
캘리포니아에서 한인들의 대학 진학률과 학위 취득률은 전체적으로 높은 편이지만, 같은 한인 학생들 사이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를 수 있다. 저소득층 가정이나 이민 1세대 가정의 자녀, 가족 가운데 처음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부모를 둔 학생들은 입학 이후 학업과 진로 과정에서 별도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
특히 ‘아시안 학생은 교육 수준이 높고 학업에 어려움이 적다’는 인식 때문에 지원 필요성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세분화된 자료를 활용하면 대학이 한인 학생을 포함한 각 집단의 실제 상황을 파악하고 상담과 장학, 진로지원 프로그램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
다만 이번 법을 한인 학생에게 직접 장학금을 지급하는 제도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AB 2374에는 별도의 장학금이나 등록금 지원을 자동으로 제공하는 조항이 없고, 한인 학생에게 입학 우대를 주는 내용도 포함돼 있지 않다.
대신 대학이 지정을 받기 위해 상담과 학업 지원, 기본생활 지원, 교직원 교육, 민족학 과정, 학생 성과자료 분석 등에 어떤 자원을 투입할 것인지 공개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따라서 한인 학생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변화는 현금 지원보다는 학교 내 서비스 확대와 대학의 책임성 강화가 될 가능성이 크다.
캘리포니아는 이미 CSU와 커뮤니티칼리지에서 아태계 학생 성취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여기에는 문화적 배경을 고려한 학습 공동체와 학업상담, 정신건강 상담, 취업·경력개발, 과외와 보충수업, 인턴십, 멘토링 등이 포함돼 있다.
AB 2374는 이 같은 지원을 일부 대학의 단기 프로그램에 그치지 않고, 대학이 5년 단위의 장기 전략으로 만들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학생과 학부모는 앞으로 대학이 어떤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지뿐만 아니라, 어떤 목표를 세우고 그 성과를 어떻게 측정하는지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한인 커뮤니티와 대학 사이의 연계도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법은 대학이 지역사회의 아시안계 커뮤니티가 겪는 문제를 연구하고 학생 모집과 진학 안내, 지역사회 연계 프로그램 등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학이 한인 학생단체나 한인 커뮤니티 기관과 함께 진학설명회와 멘토링, 취업 네트워크,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한국계 미국인의 역사와 이민 경험을 다루는 교육·연구를 확대할 여지도 있다. 다만 한인단체와의 협력을 법으로 의무화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실제 프로그램은 각 대학과 지역사회의 참여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주정부에 따르면 2024~2025학년도 캘리포니아 커뮤니티칼리지 약 220만 명 가운데 아시아계 학생은 24만8천여 명, 하와이 원주민·태평양 도서계 학생은 약 8천 명이었다. CSU에서는 전체 재학생 약 47만 명 가운데 아시안계가 7만1천여 명이었으며 UC에서도 아시안계 학생 비율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특히 베이 지역은 UC와 CSU, 커뮤니티칼리지에 아시아계 학생이 많이 재학하고 있어 새 지정제가 시행되면 지역 대학들의 학생 지원정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들이 지정 신청을 위해 기존 프로그램을 정비하거나 새로운 상담·진로·편입 지원 프로그램을 만드는 움직임도 나타날 수 있다.
이번 제도는 연방정부가 일부 소수계 지원 대학 보조금 사업을 중단한 이후 캘리포니아가 독자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연방 교육부는 2025년 일부 소수계 지원기관 보조금 프로그램을 종료하면서 대학들이 관련 지원금을 잃거나 축소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캘리포니아 주의회 분석에 따르면 당시 커뮤니티칼리지와 CSU, UC에서도 상당한 규모의 관련 연방 보조금이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AB 2374는 이 자금을 직접 대신 지급하는 법은 아니지만, 연방정부와 별도로 캘리포니아가 자체적인 아태계 학생 지원대학 기준을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
새 제도가 특정 인종 학생에게 입학 우대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 학생 비율을 맞춰야 한다는 조건도 없으며, 대학 입학 점수를 다르게 적용하거나 정원을 따로 배정하는 내용 역시 포함돼 있지 않다. 핵심은 입학 이후 학생들이 실제로 졸업하고 편입하며 진로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학교가 지원체계를 마련하도록 하는 데 있다.
대학 지정 심사는 9명으로 구성되는 운영위원회가 맡는다. 부지사 측과 주의회, UC·CSU·커뮤니티칼리지 관계자, 독립대학협회, 주의회 아시안·태평양계 코커스, 캘리포니아 아시안·태평양계 위원회 관계자 등이 참여하며 참석 위원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지정이 승인된다.
신청 절차는 캘리포니아 커뮤니티칼리지 총장실이 관리하게 된다. AB 2374는 일반 법률 시행 일정에 따라 2027년 1월 1일부터 효력이 발생할 예정이며, 이후 세부 신청 절차와 심사 기준이 마련되면 대학들의 첫 지정 신청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한인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는 앞으로 어떤 대학이 이 지정을 받는지뿐 아니라 각 학교가 공개하는 세부 계획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한인 학생의 졸업·편입 관련 세분화된 자료가 실제로 얼마나 반영되는지, 한인 학생단체와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한 지원이 포함되는지, 상담·멘토링·취업 프로그램이 실질적으로 확대되는지가 이번 제도가 한인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하는 핵심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