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개국 발급 중단은 법원 명령으로 해제…제한 여파 지속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불법 이민 단속뿐 아니라 합법적인 이민 절차에 대해서도 규제를 강화하면서 미국의 신규 이민비자 발급이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2월 전 세계 이민비자 발급 건수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전 월평균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한국 출생자를 대상으로 한 이민비자 발급도 약 19%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뉴욕타임스가 10월 18일 보도한 미국 국무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2월 전 세계 이민비자 발급량은 약 2만6,000건으로 집계됐다. 2025년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전 월평균 약 5만2,000건과 비교하면 50%가량 감소한 규모다. 이민비자는 미국 영주권 취득을 목적으로 해외 미국 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발급하는 비자로, 가족초청과 취업이민 등이 포함된다.
한국 출생자의 이민비자 발급 역시 감소세를 보였다. 2023년과 2024년 월평균 약 420건이었던 발급량은 올해 2월 약 340건으로 줄었다. 실제 미국 국무부가 공개한 2월 이민비자 발급 현황을 확인한 결과 한국 출생자 등의 발급 건수는 총 336건으로, 이전 월평균과 비교해 약 2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도에서 제시한 19% 감소는 반올림된 수치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으로의 이민 수요가 높은 주요 아시아 국가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중국의 이민비자 발급은 31% 감소했고 일본은 25%, 인도는 16% 줄었다. 반면 캐나다와 멕시코의 발급량은 각각 142%, 17% 증가해 국가별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지역별 감소 폭은 더욱 컸다. 중앙아시아 국가의 이민비자 발급은 이전과 비교해 99% 급감했으며 아프리카는 89%, 동유럽은 84%, 중동은 81% 감소했다. 호주와 오세아니아 지역에서도 73% 줄어드는 등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미국 이민 통로가 크게 좁아진 것으로 분석됐다.
이 같은 변화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올해 초 시행한 국적별 입국 제한과 이민비자 발급 중단 조치가 영향을 미쳤다. 미국 정부는 1월 1일부터 39개국 국민 등에 대해 전면 또는 부분적인 입국·비자 제한을 시행했으며, 1월 21일에는 별도로 75개국 국민에 대한 이민비자 발급을 일시 중단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러한 조치가 국가안보를 강화하고 미국의 공공복지에 재정적 부담을 줄 가능성이 있는 이민 신청자를 더욱 엄격하게 심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신청자의 재정적 자립 능력과 공적부조 의존 가능성을 심사하는 방침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대규모 이민비자 중단 조치는 법원의 판단으로 일부 변경됐다. 미 국무부는 지난 8월 28일 발표한 공식 안내에서 연방법원의 명령에 따라 8월 21일부터 75개국 국민에 대한 이민비자 발급 일시 중단 조치가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별도의 대통령 포고령에 따른 입국 제한과 비자 제한은 구분해서 적용되기 때문에 모든 국가의 이민 절차가 이전과 동일하게 회복된 것은 아니다.
합법적인 이민을 위한 비자뿐 아니라 유학과 취업 등 일시 체류를 목적으로 하는 비이민비자 발급도 감소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올해 2월 유학생 및 근로자 관련 비자 발급은 전년 대비 약 30% 줄었고, 관광·사업 목적 비자 역시 약 25% 감소했다. 이 같은 변화는 영주권을 목적으로 하는 이민뿐 아니라 미국 대학 진학과 해외 인력 채용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인의 비이민비자 발급에서도 감소 추세가 확인된다. 지난 9월 한국 국회 홍기원 의원실이 미국 국무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한국인에게 발급된 미국 비이민비자는 2024년 7만4,015건에서 2025년 6만8,130건으로 7.95% 감소했다. 특히 한국인 유학생에게 발급된 비자는 2024년 월평균 1,195건에서 2025년 965건으로 줄었고, 2026년 1~2월에는 월평균 273건까지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민정책 전문가들도 합법이민 축소 규모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의 자유지상주의 성향 싱크탱크인 카토연구소의 이민정책 전문가 데이비드 비어는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을 제외하면 이번 이민 제한이 대공황 당시 허버트 후버 행정부 이후 가장 큰 규모의 합법이민 축소에 해당한다고 평가했다.
특히 미국 시민권자와의 결혼이나 가족초청을 통해 이민을 준비해 온 신청자들도 정책 변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장기간 이민 절차를 진행했지만 마지막 비자 발급 단계에서 심사가 중단되거나 지연되면서 가족이 서로 떨어져 생활하는 사례를 소개했다.
이번 통계는 해외 미국 대사관과 영사관에서 발급된 이민비자를 기준으로 한다는 점에서 미국 내에서 진행되는 영주권 신분조정 승인까지 모두 포함한 수치는 아니다. 따라서 2월 비자 발급량이 절반으로 감소했다는 사실을 미국 전체 영주권 취득자나 합법 이민자 수가 동일한 비율로 줄어든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한국은 올해 초 대규모 이민비자 발급 중단 대상인 75개국이나 별도 입국 제한 대상인 39개국에 포함되지 않았다. 한국인의 발급량 감소가 한국 국적자에 대한 직접적인 비자 금지 때문이라고 볼 근거는 없는 셈이다. 다만 취업이민이나 가족초청을 준비하는 한국인들도 심사 강화와 행정 처리 변화에 따라 이민 절차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수치는 주로 올해 2월 발급 현황과 과거 평균을 비교한 것으로, 8월 법원 판결 이후 발급량이 얼마나 회복됐는지까지 보여주지는 않는다. 향후 국무부의 추가 통계를 통해 일시적인 비자 발급 감소가 장기적인 이민 감소로 이어질지, 법원 판결과 정책 변경에 따라 다시 증가할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