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 나를 움직이는가, 지금도 말을 건네는가”
“이 전시는 저 자신을 꽤 길게 소개하는 자리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금 쑥스럽기도 합니다.”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RM × SFMOMA’ 전시를 앞두고 미디어 데이에 나선 방탄소년단의 RM은 자신의 소장품을 공개하는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무대 위에서 음악과 메시지를 전해 온 그는 이날 공동 큐레이터로서 작품을 고르고, 설명을 쓰고, 전시 공간을 구성하며 마주한 고민을 솔직하게 풀어놓았다.
RM은 “공동 큐레이터로서 첫선을 보이는 자리라 긴장된다”며 연설을 시작했다. 오랜만에 연설에 나섰다는 그는 원고를 열 번 정도 고쳤지만, 수정할수록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졌다고 털어놨다. 웃음과 머뭇거림이 섞인 말에는 자신의 취향을 대중 앞에 펼쳐 보이는 설렘과 부담이 함께 담겼다.
그는 약 8년 전 처음 미술관을 찾아 작품을 보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후 개인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 동양과 서양, 근대와 현대를 둘러싼 여러 생각을 이야기해 왔지만, 정작 전시 개막을 앞두고는 보다 단순한 질문으로 돌아가게 됐다고 했다.
“그런 것들이 정말 중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저 좋고, 새롭고, 흥미로운 전시이면 되는 것 아닐까요.”
이번 협업의 출발은 군 복무 중이던 약 2년 전이었다. RM은 당시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으로부터 본격적인 제안을 받았고, 이를 반갑게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군대에 있었기 때문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오는 어떤 제안이라도 기뻤을지 모른다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면서도, 이번 전시가 자신이 오랫동안 꿈꿔 온 공간을 향한 중요한 경험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언젠가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공간을 열기 전에, 규모와 위상을 갖춘 미술관에서 다른 이의 공간을 빌려 흥미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한 작업은 작품 설명을 수없이 쓰고 지우고 다시 쓰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RM은 처음에는 그 순수함이 자신을 이토록 많은 문안 작업으로 이끌 줄 몰랐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가 미술에 기대게 된 이유에는 어디에 있어도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하는 듯한 감각이 있었다. RM은 미국에 있을 때뿐 아니라 자신이 나고 자란 서울에 있을 때도 어딘가를 떠돌거나 떠 있는 느낌을 받는다고 털어놨다.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그 감정 때문에 예술에 많이 의지해 왔다는 설명이다.
“미술과 음악은 언어와 매체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둘 다 무언가를 말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이 발언은 음악가인 RM이 미술을 바라보는 출발점을 드러낸다. 그에게 작품은 감상의 대상이면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비춰 보고 다른 시대와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통로다. 이번 전시 역시 그가 작품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관람객에게 어떻게 건네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자리로 읽힌다.
RM은 어린 시절부터 무언가를 모으는 일을 좋아했지만, 수집에 대한 죄책감도 함께 느낀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까지 너무 많이 지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묻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좋아해 모은 작품들을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소장품 공개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그의 소장품에는 한국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RM은 이들 가운데 많은 이름이 한국 밖에서는 여전히 낯설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취향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가 해외 관람객에게 한국 미술을 만나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긴 대목이다.
다른 사람들의 소장품을 살펴본 경험은 자신의 수집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RM은 오랜 시간 돈과 삶, 노력, 심지어 집의 벽면까지 내어주며 만들어 온 컬렉션만큼 한 사람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도 드물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어떤 작품을 선택하고, 곁에 두고, 오래 바라봤는지에 그 사람의 삶과 취향이 쌓인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는 작품을 통한 자기소개다. 다만 RM은 자신의 모든 선택을 명확한 말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때로는 왜 그 작품들을 모았는지 자신도 잘 모르겠다며, 전시의 한 섹션에 ‘잘 모르겠지만, 좋아요’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도 그 솔직한 감정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스스로가 자랑스럽다가도 부끄러워지는 감정을 오간다고 했다. 결국 자신은 자신 이상의 무엇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작품을 선택하는 과정에서는 두 가지 질문을 가장 중요하게 붙들었다.
“이 작품이 정말 나를 움직이는가. 그리고 지금, 2026년에도 이 작가와 이 작품이 우리에게 할 이야기가 있는가.”
RM은 모든 것이 빠르게 소비되는 시대일수록 과거의 작가들이 보여준 태도가 오늘날 더욱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작품이 만들어진 시점과 지금 사이의 거리를 넘어, 그 안에 담긴 생각과 삶의 자세가 현재의 관람객에게도 의미를 갖는지 살폈다는 설명이다.
서로 다른 장소와 시대, 경계와 배경이 한데 어우러지는 모습도 그가 오래 꿈꿔 온 전시의 방향이다. RM은 미술사를 정식으로 공부하지 않았고 전문 큐레이터도 아니기 때문에 그 시도가 어수선하게 보일 수 있다고 인정했다. 동시에 어느 분야에서든 외부자의 시선이 새로운 바람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미술계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 자신에게 조금 더 자유를 줬다는 것이다. 다만 작품 설명 하나를 100단어 안에 담아야 하는 작업에는 익숙하지 않았다며, 이를 이번 전시 준비에서 가장 어려웠던 일로 꼽았다. 좋아하는 작품에 대한 생각을 짧고 분명한 언어로 전달하는 과정 역시 그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한국 미술을 소개하려는 마음에는 한국의 역사에 대한 인식도 자리하고 있었다. RM은 지난 한 세기 동안 한국이 식민 지배와 전쟁, 매우 빠른 발전을 겪었다고 짚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이 사라졌지만, 동시에 놀랍고 빛나는 것들도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젊은 사람으로서 조금 더 새롭고 젊은 시각과 감각을 보태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모아 왔으며, 그 시간이 결국 이번 전시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한국 근현대 미술을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감각으로 다시 바라보고, 그 안에서 발견한 가치를 더 넓은 관객과 나누려는 의지다.
RM은 작품 선정에서 배치와 액자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좋아했던 것들과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함께 담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가능한 한 흥미롭고 새로운 전시를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약 2년 동안 전시를 함께 준비한 미술관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전하면서, 협업 과정에서 모든 구상을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실행하지 못한 재미있는 아이디어도 많았지만, 자신의 꿈을 모두 그대로 구현했다면 오히려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농담했다. 서로의 생각을 조율하며 결과물을 만들어 가는 과정 자체가 이번 협업의 아름다움이라는 설명이었다.
연설 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도 RM은 전시의 의미를 ‘자기소개’와 ‘관람의 즐거움’으로 정리했다. 이번 전시에 자신의 모습이 상당 부분 담겨 있는 만큼, 관람객이 작품을 통해 자신을 조금 더 알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동시에 사람들이 전시를 보러 가는 일이 얼마나 재미있고 즐거운지 느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샌프란시스코를 선택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짧고 명쾌하게 답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도시 가운데 하나니까요.”
이번 연설에서 RM이 내놓은 것은 완성된 미술 이론보다 자신이 작품과 관계를 맺어 온 시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무엇이 자신을 움직였는지, 왜 그 작품을 곁에 두고 싶었는지, 그 작품이 오늘의 사람들에게도 말을 건넬 수 있는지를 묻는 과정이다. ‘RM × SFMOMA’는 그 질문을 개인의 집과 소장품에서 미술관으로 옮겨, 관람객이 함께 바라보고 각자의 답을 찾도록 여는 전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