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국감서도 “외교부 입장 고려”…5년 만에 배경 확인
샌프란시스코 세인트 메리스 스퀘어에 세워진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를 총영사를 비롯한 주샌프란시스코총영사관 직원들이 사실상 찾지 않고 있는 배경에 외교부의 지침과 정책적 입장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북가주 한인사회에서는 위안부 기림비에서 기념행사가 열릴 때마다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하는 총영사와 공관 관계자들이 참석하지 않는 것을 두고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다. 특히 2021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총영사관의 소극적인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지만 이후에도 별다른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베이뉴스랩은 최근 동포가담회 건의사항을 통해 샌프란시스코 위안부 기림비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전시 성폭력의 역사를 후세에 알리는 상징적인 장소인 만큼, 지역 한인들이 행사를 개최하거나 한국에서 주요 방문객들이 찾을 경우 총영사를 비롯한 공관 직원들도 함께 참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이에 외교부는 북미2과 이지현 과장 명의로 보내온 답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 등의 설치는 전시 성폭력이라는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알리고 기억하기 위한 해당 지역과 시민사회의 자발적 움직임에 따른 것으로, 이러한 민간 차원의 활동에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음”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총영사관이 위안부 기림비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아 논란이 계속돼 왔지만, 이번 외교부의 공식 회신을 통해 공관의 태도 뒤에 ‘민간 활동에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외교부의 정책적 판단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 확인된 셈이다.
이 같은 사실은 이미 5년 전 국정감사에서도 사실상 드러난 바 있다.
2021년 10월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총영사관이 위안부 기림비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 것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다.
당시 태영호 의원은 윤상수 총영사에게 한인사회가 주관하는 위안부 기림비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는지를 물었고, 참석한 적이 없다는 답변을 듣자 “총영사가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외교부의 지침 때문 아니냐”며 정확한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김영호·김홍걸 의원도 한인사회가 직접 비용과 노력을 들여 기림비를 세운 상황에서 총영사관이 적극적으로 격려하기는커녕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윤상수 당시 총영사는 “민간 단체들이 주도해 위안부 기림비 건립과 기념 사업을 하는 것이 외교 분쟁을 피할 수 있고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며 “기념행사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외교부의 입장과 북가주 지역 상황을 종합해 판단하고 있다”고 답했다.
당시에는 총영사가 ‘외교부의 입장’을 언급하는 수준에 그쳤지만, 이번 외교부의 공식 답변은 공관이 왜 위안부 기림비와 관련 행사에서 거리를 둬왔는지를 보다 분명하게 보여준다.
문제는 샌프란시스코 위안부 기림비를 지금도 단순한 ‘민간 차원의 활동’으로만 볼 수 있느냐는 점이다.
기림비는 시민사회가 건립을 주도했지만 샌프란시스코 시정부의 공식 절차를 거쳐 세워졌고, 이후 샌프란시스코 시·카운티에 기증됐다. 샌프란시스코 예술위원회는 2017년 12월 기림비를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소유권이 샌프란시스코 시·카운티로 이전된다고 공식 의결했다. 현재 기림비는 샌프란시스코 시의 공공미술 자산으로 관리되고 있다.
기림비 비문 역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한일 양국 사이의 외교적 갈등으로만 규정하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 예술위원회가 승인한 비문에는 수십만 명의 여성과 소녀들이 일본 제국주의 군대에 의해 성노예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과 함께 전쟁 수단으로 사용되는 성폭력이 인류에 대한 범죄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때문에 기림비의 건립 과정이 시민사회 주도로 이뤄졌다는 이유만으로 대한민국 총영사와 공관 직원이 피해자를 추모하는 행사에 참석하는 것까지 ‘정부의 관여’로 보는 외교부의 판단이 적절한지를 두고 논란이 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다.
특히 2017년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진 이후 북가주 한인사회는 위안부정의연대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과 함께 매년 기념행사를 열며 피해자들을 추모하고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활동을 이어왔다. 하지만 한인사회가 중심이 돼 지속적으로 열어오던 정례적인 기념행사는 2022년을 기점으로 사실상 끊긴 상태다.
기림비 건립 당시 지역 한인들은 직접 모금에 나서고 샌프란시스코 시정부와 정치인들을 설득하며 건립에 힘을 보탰다. 그런 지역 한인들의 노력과 달리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하는 공관이 ‘민간 차원의 활동’이라는 이유로 지속적으로 거리를 둬온 데 대해 한인사회에서는 정부와 공관의 무관심이 결국 기림비 관련 활동의 동력을 약화시킨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돼 왔다.
또한 공관이 일본 정부와의 외교적 마찰을 지나치게 의식해 위안부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꾸준히 나왔다. 다만 외교부는 이번 회신에서 일본 정부나 한일관계를 행사 불참의 직접적인 이유로 언급하지 않았으며, 공식적으로는 ‘민간 차원의 활동에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이 같은 외교부와 공관의 태도는 이재명 정부가 공개적으로 밝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입장과도 대비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3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별세하자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며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굳건히 세워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이 피해자의 존엄과 명예 회복, 역사 기억의 중요성을 직접 강조하고 있지만 해외 현장에서는 외교부가 ‘민간 차원의 활동’이라는 이유를 들어 공관의 적극적인 참여와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원칙과 실제 외교 현장의 대응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욱이 이 대통령은 지난 7월 샌프란시스코를 직접 방문해 지역 동포들과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당시 청와대는 샌프란시스코를 “독립운동의 성지”라고 소개하며 서부지역 한인사회와의 소통을 강조했다.
그러나 독립운동과 한인 이민 역사의 의미를 강조하면서도 같은 샌프란시스코 도심에 위치한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를 현지 대한민국 공관이 사실상 외면하고 있다는 것은 지역 한인들이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는 지적이다.
이번 외교부 답변으로 적어도 한 가지는 보다 분명해졌다. 샌프란시스코 총영사나 개별 공관 직원이 개인적인 판단으로 위안부 기림비를 찾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민간 차원의 활동에는 정부가 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외교부의 정책적 입장이 공관의 행동에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해 왔다는 점이다. 2021년 국정감사 당시 윤상수 총영사가 “외교부의 입장”을 언급했던 이유도 이번 외교부 회신을 통해 보다 명확해졌다.
결국 이제 문제의 초점은 총영사 개인의 참석 여부를 넘어 외교부의 정책 자체가 적절한지 여부로 옮겨가게 됐다.
위안부 기림비 건립 사업을 대한민국 정부가 직접 주도하거나 민간단체의 운영에 개입하는 것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이 피해자를 추모하고 전시 성폭력의 역사를 기억하는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분명히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샌프란시스코 시정부가 공식적으로 받아들여 관리하고 있는 공공 기념물이고, 대한민국 정부 스스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 회복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총영사나 공관 직원의 방문까지 ‘민간 활동에 대한 정부 관여’로 보는 것이 타당한지 외교부는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2017년 기림비 건립에 발 벗고 나섰던 북가주 한인들에게 위안부 기림비는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다. 피해자들의 고통을 기억하고 일본군 위안부 역사를 다음 세대에 알리기 위해 지역사회가 직접 만들어낸 역사적 결과물이다.
그런 기림비를 정작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총영사관이 찾지 않는 이유가 외교부의 방침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이제는 총영사관뿐 아니라 외교부가 지역 한인사회에 그 정책의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