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 아사와 등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 한자리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은 어떻게 미국 현대미술의 주요 무대가 됐을까. 태평양을 따라 흐르는 해류처럼 북가주 예술의 흐름을 형성해 온 자연환경과 이민자 공동체, 기술혁신, 예술가들의 교류를 살펴보는 특별전이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열린다.
스탠퍼드대학교 캔터미술관은 29일 특별전 ‘캘리포니아 커런트: 베이 지역의 예술과 역사(California Current: Art and Histories from the Bay Area)’를 개막했다. 이번 전시는 20세기부터 현재까지 베이 지역에서 활동한 예술가들의 회화와 조각, 사진, 드로잉, 영상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과 예술적 변화를 조명한다.
전시 제목인 ‘캘리포니아 커런트’는 북미 서해안을 따라 흐르는 차가운 해류인 캘리포니아 해류에서 가져왔다. 미술관은 해류가 지역의 자연환경과 생태계를 형성하듯, 시대에 따라 변화해 온 사회적·정치적·문화적 흐름이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과 지역 주민들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본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부분은 개별 예술가의 작품뿐 아니라 이들을 연결했던 인간관계와 공동체의 역사다.
전시 기획의 출발점이 된 작품은 일본계 미국인 조각가 루스 아사와가 찰스 웡에게 선물한 3중 구조의 철사 조각이다. 현재 캔터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작품은 예술가들 사이의 우정과 신뢰, 창작 활동을 이어가게 한 공동체의 역할을 보여준다.
큐레이터들은 이 작품에 담긴 개인적인 인연을 추적하면서 베이 지역 예술가들이 수십 년에 걸쳐 구축한 교류와 협력의 역사를 발견했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예술가들이 작품을 통해 영향을 주고받고, 다음 세대에 창작의 유산을 전달해 온 과정도 전시에 담았다.
미국의 대표적인 사진작가 이모젠 커닝햄의 컬러사진도 공개된다. 이 작품은 커닝햄이 수집가 잰 포크너에게 선물한 것으로, 이후 포크너의 친구 마시 아델먼이 캔터미술관에 기증했다. 빛에 의한 훼손을 막기 위해 약 50년 동안 보관돼 왔던 작품이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과 만난다.
베이 지역의 자연환경과 도시 풍경을 바라보는 예술가들의 시선도 전시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일본계 미국인 화가 지우라 오바타는 1930년대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풍경을 작품에 담아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계 미국인 강제수용 정책에 따라 유타주 토파즈 수용소에 갇힌 상황에서도 미술 교육을 이어갔다. 그의 산악 풍경화는 캘리포니아의 자연을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화가 로버트 벡틀은 이와 대조적으로 앨러미다와 샌프란시스코 선셋 지역의 평범한 거리에서 예술적 소재를 발견했다. 도로에 주차된 자동차와 오후의 햇빛, 특별할 것 없는 주거지역의 풍경을 통해 베이 지역의 일상을 기록했다.
밀드레드 하워드는 8mm 필름에서 추출한 한 장면을 벽지에 인쇄해 흐릿한 풍경을 정지된 이미지로 재구성했다. 린 허시먼 리슨은 실리콘밸리에서 인공지능과 감시기술이 일상화되기 훨씬 전부터 이러한 기술을 예술적 주제로 다뤘다.
이들 작품은 베이 지역이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진 곳인 동시에 급격한 도시화와 기술 발전, 사회적 갈등과 변화를 경험해 온 공간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전시에는 루스 아사와를 비롯해 파시타 아바드, 버니스 빙, 아말리아 메사베인스, 훙 리우, 사이프 아주즈, 줄리언 브레이브 노이즈캣, 코타 에자와 등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예술가들의 작품이 소개된다.
이민자와 원주민, 아시아계 미국인 예술가들의 작품을 함께 배치한 점도 눈길을 끈다. 서로 다른 역사와 정체성을 가진 예술가들의 활동을 통해 베이 지역의 문화적 다양성과 창작 환경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려는 취지다.
특히 스탠퍼드대학교가 이들 예술가의 기록과 자료를 상당수 보관하고 있다는 점도 이번 전시의 의미를 더한다. 작품뿐 아니라 예술가들이 남긴 기록과 개인적 교류의 흔적까지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특별전은 2027년 3월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북가주 광역 예술 프로젝트 ‘퍼더 트리엔날레(Further Triennial)’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퍼더 트리엔날레는 북가주 전역의 미술관과 문화기관이 참여해 지역의 창작 활동과 예술사를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하는 공동 프로젝트다. 현대미술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지역 예술사의 장면과 사회적 문제도 다룰 예정이다.
스탠퍼드대학교에서도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여러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캔터미술관에서는 2027년 3월 ‘캐시 아오키: 쿤스 루인스’가 개막하며, 앤더슨 컬렉션에서는 같은 달 베이 지역 인물 표현의 변화를 살펴보는 ‘폴트 라인스(Fault Lines)’ 전시가 열린다.
이 밖에도 스탠퍼드대학교 도서관에서는 교수진의 아티스트북과 베이 지역 예술가들의 아카이브를 소개하는 전시가 2027년 봄에 이어질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캔터미술관 현대미술 부문 부큐레이터이자 아시아계 미국인 미술 이니셔티브 공동 디렉터인 알리사 피차만 알렉산더를 비롯해 사진·뉴미디어 담당 매기 데슬로프, 원주민 미술 담당 조애나 가르시아 체란, 전 큐레이터 보조 호르헤 에두아르도 시바하가 공동 기획했다.
캔터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사람들이 왜 베이 지역으로 모여들었고, 다양한 공동체와 예술 활동이 어떻게 뿌리를 내렸으며, 높은 생활비와 사회적 갈등,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도 무엇이 사람들을 이 지역과 연결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1891년 스탠퍼드대학교 설립과 함께 문을 연 캔터미술관은 5,000년에 걸친 세계 각국의 예술품 4만 점 이상을 소장하고 있다. 미술관은 일반인에게 무료로 개방되며, 이번 특별전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관람 시간은 월요일과 금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 목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화요일과 수요일은 휴관한다.
미술관은 스탠퍼드대학교 캠퍼스 내(328 Lomita Drive)에 있으며, 자세한 내용은 공식 홈페이지(museum.stanford.edu)에서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