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숙 작가의 살아가는 이야기] 아주 잘생긴 노숙자를 봤는데

오른쪽으로 보이는 남자가 사흘을 굶었다는 노숙자.
이 동네에 아주 희한한 여자가 하나 있습니다. 미국인 남편이 죽어 혼자 된 여자. 남편이 물려준 연금이랑 재산이 좀 되어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해요. 그런데 팔자가 편하니까 이상한 곳으로 힘이 뻗칩니다. 나이도 꽤 되는 여자가 온 동네 남자들과 추문을 뿌리고 다니는 겁니다. 그것도 성에 안 찼는지 동네에 잔디 깎으러 다니는 히스패닉 남자들 몇몇과도 그렇고 그런 관계라고 합니다. 급기야는 노숙자들까지 손을 댔대요. 차 타고 다니다가 잘생기고 힘 좋아 보이는 노숙자들이 눈에 띄면 집에 데려다가 ‘싹 씻겨서’ 애인을 만든답니다. 외로움을 참지 못하는지 섹스중독인지 하여튼 그렇답니다.

아닌게 아니라 언제 한 번 그녀를 한국식당에서 봤는데 젊고 잘생긴 백인 남자를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옆에서 사람들이 수군대며 욕했지요. 노숙자였던 남자로 벌써 두 번째 갈아치운 거라고. 섹스에 미친 여자라고. 글쎄요. 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것도 아닌 남의 사생활을 욕할 것까지야. 남자는 따뜻한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받아 좋을 거고 여자는 욕구를 충족할 수 있으니 서로 윈윈이지 뭐.

지난 일요일이었습니다. 위에 쓴 여자의 연락처를 알고 있었더라면 얼른 와서 데려가라고 전화하게 생긴 ‘멋진’ 노숙자를 보았습니다. 노숙자가 노숙자지 멋있는 노숙자라니하고 독자님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겠지만 진짜 뛰어나게 멋있는 외모를 가진 노숙자도 있더군요.

할 일도 없고해서 혼자 백화점에 아이 쇼핑을 갔었지요. 그 멋진 노숙자는 백화점 1층의 출입구 바로 앞의 구두섹션에 있었습니다. 나는 그가 쳐다보는지도 몰랐어요. 이 구두 저 구두를 신어보고 있었는데 어디선가로부터 나를 향해 꽂히는 시선을 느꼈어요. 고개들어 보니 바로 위에 말한 노숙자가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띄우고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거였습니다. 부인 따라 온 남편들 쉬라고 비치해 놓은 등받이 없는 소파말입니다. 노숙을 하다가 얼음이 얼 정도로 추운 날씨를 피해 실내로 들어온 것 같았습니다. 양심은 있는지 완전히 널부러지지는 않았네요. 팔꿈치로 소파를 괴고 반쯤 누워 있습니다.

위에 말했듯 서른 후반 쯤 되었을까한 그의 외모가 범상치 않습니다. 반듯한 이마, 깨끗한 피부, 곧은 콧날, 금발, 호수같이 깊디 깊은 회색 눈동자, 그리고 1미터 80은 넘어보이는 키에 걸맞게 긴 다리와 슬림한 몸매. 우와, 그는 향수광고나 양복광고에 나오는 모델같았습니다. 옆에 아무렇게나 놓여진 국방색 배낭이 아니라면, 때가 묻고 마구 구겨진 외투가 아니라면, 지쳐보이는 얼굴 표정이 아니라면, 오랫동안 빗질 하지 않아 마구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아니라면, 여성들 구두가 잔뜩 놓인 매장 옆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노숙자라고 짐작하지 못할 멋진 외모의 남자. 비웃는 것도 아니고 자조하는 것도 아닌 야릇한 미소, 그 미소가 그 남자를 더욱 신비하게 보이게 하고 있었습니다. 천상의 미모를 가진 남자가 무슨 사연으로 노숙자가 되었을까요.

나는 나도 모르게 남자를 흘끔흘끔 쳐다보았고 다른 여성들 역시 나와 같았어요. 손과 발은 구두에게 있었지만 시선은 모두 그 남자를 향해서. 그러나 그 미묘하고도 황홀한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아쉽게도(!) 그는 누군가의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비원에 의해 건물 밖으로 끌려나가고 말았거든요.

노숙자를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들이 어떤 질병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돌발적인 행동을 보일지 모르니까 무서워서요. 그래서 일단은 피하고 봅니다. 또한 흔히 말합니다. 음식을 사줄 지언정 돈은 주지 말라고. 마약을 살지도 모르니까. 나 역시 그런 말을 숱하게 들었습니다.

세상 사는 일에 정답은 없듯이 예외도 있어요. 지난 추수감사절을 전후해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 간 일이 있었어요. 간단한 약을 타야하는 남편을 따라. 집에 갇혀 따분해하는 강아지들도 끌고 갔습니다. 남편은 약을 타러가고 강아지들과 건물밖에서 서성거리고 있는데 보기에도 딱 노숙자 행색의 남자가 멀리서 걸어 오더니 내 앞에 놓인 쓰레기통을 막 뒤져요. 아무것도 찾지 못한 듯한 그는 다시 옆 쓰레기통으로. 그 근방에 쓰레기통이 세 개 있었는데 다 뒤지더군요. 그러다가 마침내 누가 먹다 버린 햄버거 봉지를 찾아낸 것 같았습니다. 남자가 희색이 만면하더군요. 그러나 곧 그의 얼굴은 실망으로 구겨졌습니다. 열어본 봉지엔 바짝 마른 프렌치 프라이 몇 줄기랑 더러운 내프킨만 잔뜩 들어있었던 겁니다.

남자는 봉지를 버리고 벤치에 앉습니다. 그리고는 오는 사람 가는 사람에게 말을 부칩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돈을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먹다 남은 음식 있으면 달라고. 사흘동안 못 먹었다고. 음식이 있을 만한 상황이 아닌 곳입니다. 아파서 병원에 온 사람들이, 약을 타러 온 사람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가지고 있을리가요. 모두 고개를 저으면서 지나가버립니다. 아니, 남자가 말을 붙히기도 전에 질겁을 하면서 피해 버려요. 눈길 조차도 주지 않고 빙 둘러서 가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단 한사람도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습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찢어졌습니다. 한 끼라도 배를 채우게 해야할 것 같았습니다. 남편을 따라 간 거라 지갑을 지참하지 않았습니다. 약을 타가지고 나온 남편에게 캐쉬를 좀 달라고 하니 당연히 왜라고 묻지요. 앞에 보이는 노숙자를 가리키니 남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습니다. 다른 미국인들과 똑같은 반응. 돈을 주면 안 된다. 마약을 한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을 눈 앞에서 봤다고, 저 남자는 사흘을 아무것도 못먹었다고 사정을 해서야 겨우 돈 40불을 뺏을 수 있었습니다.

한때 나는 노숙자를 참 한심한 눈길로 바라본 적 있습니다. 미국땅에 발을 디디자마자 투잡 세잡씩 뛰면서 돈을 벌어야했던 나에겐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영어 한 마디 못하는 나도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영어 잘 하겠다, 사지 멀쩡하겠다, 자기만 열심히 하면 모든 걸 이룰 수 있는 미국에서 게을러 터져서라고 냉소를 보냈더랬지요. 특히 요즘은 노숙자들이 넘쳐납니다. 이곳 주택가까지 노숙자들이 한 둘 보이기 시작할 뿐만 아니라 조금만 외지다 싶으면 노숙자들이 금방 텐트촌을 만들어버려요. 그곳을 지날 때마다 짜증과 한숨이 저절로 났어요. 우리가 뼈빠지게 일해서 낸 세금은 다 어디로 가고 노숙자 천지를 만드는지 정치인들에게 화도 나고요.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미국의 주택문제 보통 심각한 게 아닙니다. 지인의 딸이 최근 결혼해 방 두개짜리 아파트를 얻었는데 세상에, 한 달 렌트비가 2800불이랍니다. 그 렌트비를 감당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더구나 년말을 맞아 감원의 칼바람이 여기저기 붑니다. 생활비를 많이 비축해놓지 못한 사람들은 몇 달 후 노숙자가 되고 말겠지요.

지난 12월 21일, 주택도시개발부(HUD)가 발표한 노숙자 보고서(AHAR)에 따르면 미국의 노숙 인구는 올해 58만2천462명으로 2020년보다 0.3% 증가했답니다. 뉴욕시는 2020년 7만7천943명에서 올해 6만1천840명으로 줄면서 ‘최다 노숙자 도시’의 오명을 벗었으나, 로스앤젤레스(LA)에선 6만5천111명으로 늘면서 노숙인이 가장 많은 도시가 됐다고 합니다. LA에서는 비싼 집값과 임대료, 실직, 마약 중독 등의 사유로 노숙자가 갈수록 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길거리 텐트나 버려진 자동차에서 거주하는 실정이랍니다.

캐런 배스 LA 시장은 지난 해 말, 취임하자마자 노숙자 문제 해결을 위한 비상사태를 선포한 데 이어 노숙자들을 호텔과 모텔의 임대 객실 또는 영구 거주 시설로 이주시키는 ‘인사이드 세이프’ 대책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또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미국 여러 도시에서 심각한 문제인 노숙자를2025년까지 25%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합니다.

’노숙자도 우리 이웃이네 어쩌네‘라는 뻔한 소리는 하지 않겠습니다. 어쨌거나 이번 정부의 정책이 위에 쓴 ‘ 잘생긴 노숙자’에게도, ’사흘동안 굶은 노숙자‘에게도 잘 적용되기를, 그래서 차가운 길바닥을 벗어나 일반인으로 회생할 수 있게 되기를 그저 바랄 뿐.

이계숙 작가

Related Posts

의견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