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숙 작가의 살아가는 이야기] 그 집에는 귀신이 있었다

무성한 잎사귀들로 부모집에 짙은 그늘을 만들던 오동나무.
대형병원에 팔린 부모집은 주차장이 되었습니다. 하루에 수백 대의 일반 차량과 응급차와 사람들이 분주하게 드나드는. 주차장으로 변했다하나 내 부모가 오랫동안 살던 집이 있던 장소라서 감회가 다릅니다. 그래서 고향에 내려가면 꼭 한 번 그곳을 가 보지요. 차량과 사람들이 드나드는 광경을 우두커니 서서 잠시 지켜 보다가 돌아 오지요. 내 친구 태숙이도 고향에 오면 꼭 우리 부모집 터에 들러 본다고 했습니다.

태숙이는 미국에 있는 나를 대신해 우리 부모에게 딸 노릇을 하던 친구입니다. 우리 엄마아버지 생일과 어버이날을 살뜰하게 챙기며 우리집을 드나 들던 친구. 내가 입국하면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반드시 대구에서 내려 오는 친구. 위에도 말했듯 태숙이도 꼭 우리 부모 집터에를 가본다고 합니다. 예전 흔적이 아주 없어졌음에도요. ‘아이고, 우리 태숙이 왔나?’하고 반겨주던 내 엄마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요.

태숙이가 이번에는 남편과 같이 나를 만나러 왔습니다. 나를 만나러 오기 전에 이번에도 역시 내 부모집 터에 들렀다 왔다고 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밀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태숙의 남편이 불쑥 말했습니다.

“처형(태숙이가 나보다 두 살 어려서)은 예전에 부모님집을 드나들면서 뭐 요사스러운 기분같은 걸 못 느꼈어요?”

내가 무슨 소리냐는 듯 쳐다보자 그가 주저하듯 입술을 두어번 달싹 거리더니 말했습니다.

“이 얘기는 지금까지 내 아내한테도 안 했어요. 오늘 처음 하는데. 처형 부모님 집 앞마당에 큰 오동나무요. 그 오동나무 잎이 유난히 크고 우거져 마당을 다 덮어서 어두웠잖아요. 그래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 집에 들어갈 때마다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었어요…”

아내가 친부모같이 따르고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마지못해 드나들긴 했지만 집에 들어서는 순간 뒷덜미에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섬뜩한 찬바람이 닿는 것 같아서 참 싫었다는 겁니다. 기분이 아주 나빴다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살아있을 땐 괜찮았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엄마 혼자 살 때부터 그런 기분을 느끼기 시작하다가 엄마마저 세상을 떠난 후에는 더욱 강해졌다는 겁니다. 내가 무릎을 쳤습니다.

“맞아요! 나 역시 그랬습니다. 그런 기묘한 기분을 나만 느낀 게 아니었네요.”

나는 엄마 초상치른 날 밤에 생겼던 일이며 그 후에도 그 집이 무서워서 늘 공포에 떨었다는 내 경험을 털어놓았습니다. 내 이야기를 듣던 태숙이도 입을 열었어요. 자기 역시 우리 부모가 떠난 후부터는 그 집이 무서워서 가기 싫었다고. 한여름에도 썰렁한 한기가 느껴지면서 뭔가 사람이 아닌 것이 뒤에 있는 느낌이었다고. 그렇지만 입밖에 내지 못했다고. 혼자만 느끼는 기분일 것 같아서.

그 집을 팔고난 뒤 내가 작은 동생부부한테 물어본 적이 있다고 했지요. 물론 태숙이 부부와 비슷한 대답이었습니다. 큰 올케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조카들도 무서워서 창문을 열지 못했다고. 또한 겨울에는 실내에 널어놓은 빨래가 일 주일이 지나도 안 말라서 애를 먹었다고 했고요. 그 집에 뭔가 안 좋은 기운이 있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모두가 느꼈으나 쉬쉬하고 있었던 것 뿐입니다.

내 친구 무당도 말했습니다. 터가 흉한 집이었다고. 우리 아버지가 워낙 강한 사람이라 그 안 좋은 기운을 누르고 살았는데 아버지가 늙으면서 기가 약해졌고 일찍 세상을 떠난 거라고요. 아닌게아니라 이버지는 일흔 하나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가 떠나자 그 안 좋은 기운들은 더욱 득세를 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엄마도, 동생도 죽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친구 말을 믿지 않았더랬어요. 영험하지 않은 무당이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세 명이나 죽어나간 집에 대해서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두사람도 아니고 그집을 아는 사람은 입을 모아 같은 말을 합니다. 사람 아닌 뭔가가 있는 것 같다…

다음 날 나는 작정하고 이모를 찾아갔습니다. 드세고 거세고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잘 난 줄 아는 이모. 그래서 고향에 내려가도 잘 찾아가지 않았던 이모. 이모가 부모님의 집을 중개했었다는 이야기를 오래전에 어깨너머로 들었거든요.

거의 10년만에 보는 팔순의 이모는 머리카락 하나 쇠지 않은 채 정정했습니다. 나는 그동안 내가 직접 느꼈던 그 집의 기운이며 태숙이 부부랑 동생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말했습니다. 나 혼자 느낀 거라면 뭐 잘못된 거라고 치부할 수 있겠는데 그 집을 아는 사람들은 일관되게 느낀 ‘그 무엇’이 있었다고. 그 무엇은 분명히 귀신이었다고.

내 말을 잠자코 듣고만 있던 이모가 털어놓았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그 집이 터가 세다고 했디라. 무당들이나 살 집이라고 주위에서 그랬었어. 왜냐면 원주인을 비롯해 두 가족이 그 집에 들어갔었는데 족족 다 망해서 나왔거든. 비명횡사하거나 사업을 들어먹거나 사고나서 불구가 되거나…”

그렇게 터가 세다는 집을 단지 집값이 주위보다 싸다는 이유로 우리 부모님이 샀다는 겁니다. 이모가 말했습니다.

“네 아버지한테 그 집을 소개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미리 다 했지. 네 아버지는 전혀 개의치 않더라. 오히려 코웃음을 쳤어요. 집터가 세다는 걸 믿지 않은 눈치더라니까. 너희 부모가 이사한 후 몇 년은 나도 조마조마했지만 곧 안심을 했지. 별탈이 없었으니까. 너도 알다시피 네 아버지가 워낙 기가 센 사람이잖니.”

이모집을 나와서 주차장으로 변한 부모님 집터에 다시 한 번 가보았습니다. 태숙이 남편이 말했던 오동나무, 나는 그냥 예사로 보아넘겼건 그 오동나무가 보이더군요. 병원측에서도 아름드리 나무를 베어내기가 꺼림칙했었겠지요. 여름에는 그늘도 만들어주고 할 테니까 그냥 둔 것일 겁니다.

작은 동생집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긴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귀신이 살던 집이 완전히 없어져버렸다는 데에 대한 안도의 한숨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날 저녁부터였습니다. 며칠동안 잘 지냈던 작은동생집이 갑자기 무서워지기 시작한 것이었어요. 올케랑 둘이서(동생은 일본에 가 있어서)아무 탈없이 즐겁게 지냈던 집이 무서워지다니!

작은 동생의 집은 이층으로 된 단독주택입니다. 외지에서 교사생활을 몇년하다가 낙향해 그곳에다 뼈를 묻는다며 직접 지은 집. 동생은 유난히 채광에 신경을 쓴 듯 합니다. 아랫층 이층이 이어진 사방의 통창으로 하루종일 햇빛이 들어요. 실내에서도 선블럭을 바르지 않으면 ‘토인’이 될 정도로 햇빛이 강하고 밝은 집입니다.

재작년, 2주 격리를 동생네서 했습니다. 동생이 집을 통째로 내게 내주고 올케랑 지인의 빈 아파트로 나갔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게 올케가 초등학교 교사거든요. 나는 화장실이 따로 붙은 이층에서(영국으로 유학간 조카 방)격리하고 동생은 아랫층에서 생활해도 되지만 어떠한 경우라도 교사는 격리하는 사람과는 한 공간에 있을 수 없다고해서 동생네가 내린 결단이었습니다.

보름동안 나는 혼자서 그 집에서 아주 잘 지냈습니다. 동생이 한겨레 신문 칼럼니스인만큼 책이 엄청나게 많았거든요. 책보고 아침에는 따박따박 배달되는 신문보고 틈틈이 큰동생이 대문 안에 들여주는 온갖 산해진미를 맛보면서 신선놀음했습니다. 가끔 앞 정원에 나가 운동도 하면서. 보름격리가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무섭지도 않았고요. 워낙 집이 밝고 쾌적해서 혼자 그 큰집을 쓰면서도 단 한 번도 무섭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모집에서 돌아왔던 그날밤부터 으스스한 느낌이 들더니 무섭기 시작한 겁니다. 올케가 아랫층에 불을 환하게 켜놓고 있었는데도. 밤에 무척 더워서 옥상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 놨어요. 바람에 그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는데 기절할 뻔했습니다. 분명히 바람에 닫힌 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확인하러 나가기가 주저되어요. 문 뒤에서 누가 나를 노려보며 서 있을 것 같아서. 밤에 화장실 가려고 눈을 뜰 때도 그냥 소름이 끼칩니다. 꼭 누가 나를 내려다 보는 느낌이 들어서요.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면서도 자꾸 거실 쪽을 내려다 보게 됩니다. 크고 긴 통창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을 타고 누군가가 춤을 추고 있는 것같은 생각이 들어서.

내가 즐겨보는 영화는 ‘공포’였습니다. 서양식으로 사람을 토막내고 선혈이 난무하는 그런 잔인한 내용이 아니라 ‘링’이나 ‘주온’같이 사람의 심장을 서서히 옥죄며 숨을 죽이게 하는 영화. 그런 영화를 보고 앉아 있으면 남편이 나무랍니다. 어둡고 불쾌한 영화는 잔상이 뇌에 남아 삶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아닌게 아니라 ‘검은 물 밑에서’ 란 소름끼치는 일본영화를 보고난 후 물에 젖은 검은 머리카락에 대한 잔상때문에 한동안 혼자 샤워를 못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일을 겪은 후에 공포영화는 가급적이면 삼가합니다만 지금도 그런 종류의 영화에만 구미가 당깁니다.

남편 말이 맞았습니다. 며칠동안 여러 사람들로 부터 들은 음침하고 음습한 이야기들이 내 정신을 어지럽히고 있었네요. 스폰지 물 스며들 듯 내 의식을 지배해 가고 있었네요. 나도 모르게 말이지요.

성경을 두 번이나 통독하고 ‘하나님만이 절대적 구원자’라고 정의한 고모가 아니더라도 ‘귀신’에 관한 것들은 이제 멀리해야겠습니다. 귀신 이야기들로 더럽힌 귀를 씻어야겠습니다. 앞으로는 밝고 바르고 맑은 것만 보고 듣고 말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이계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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