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숙 작가의 살아가는 이야기] 그늘 아래의 의자/아파보니 알겠네

– 그늘 아래의 의자

오며가며 인사 정도만 나누던 한 남자와 우연히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처음에는 형식적이고 으레적인 대화만 오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깊은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대체 저를 어떻게 믿고 그런 사적인 이야기를 다 하십니까, 내가 놀라서 물으니 그가 대답했다.
“훌륭한 인품과 높은 덕망으로 한인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정 회장님’과(한때 한인회장을 역임한 할배인데 아직도 한인들에게는 회장님으로 통하는)이계숙 씨가30년 가까이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면서요? 정 회장님과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좋은 관계를 이어올 정도면 이계숙 씨를 충분히 믿을 만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서요”


아침 일찍 전화벨이 요란스레 울린다. 한 할배다. 어젯밤 아내와 육탄전에 가까울 정도로 대판 싸웠다고 한다. 한숨도 못자고 아침이 되어 일터에 나왔다는 할배. 화가 풀리지 않아서 내게 하소연 할 요량으로 전화를 했단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하소연할 사람은 할배가 아니고 바로 그 부인이다. 할배가 전적으로 모두 잘못한 것이다.

화가 나서 펄펄 뛰는 사람에게 당신이 더 잘못했소, 그럴 수는 없는 일. 잠자코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거의 20여분을 혼자 떠들던 할배가 말한다. 열이 뻗쳐서 딱 죽을 맛이더니 다 털어놓고나니 속이 좀 시원하네. 할배가 전화를 끊으면서 말한다. 내 얘기 다른 사람에게 절대 안 하는 거 알지? 내가 응수했다. 걱정 마셔. 내일 한인회관 벽에다 방(榜)을 써 붙일 테니.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남녀가 있다. 처음 만나서는 죽고 못살았는데 몇 년 연애를 하다보니 서로의 결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걸핏하면 헤어지네, 마네 지지고 볶고 싸운다. 싸운 후 둘은 번갈아가며 내게 전화를 한다. 상대방의 잘못과 실책을 비난하고 헐뜯는다. 나는 그저 묵묵히 그들의 하소연을 듣는다. 그러다가 그들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사이가 좋아져서 희희낙락한다. 그들을 보며 나는 속으로 말한다. 내게 고해바친 상대의 흉과 욕들을 그대로 전해주게 되면 너희는 두 번 다시는 안 볼 철천지 원수가 될 걸?

참 이상도 하지. 도대체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믿고 자신들의 사생활을, 남들이 알아서는 안될 비밀 얘기들을 그렇게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을까. 생전 얼굴 한 번 본 적없는 독자들이야 서로 모르니까 숨김없이 자기 사정을 털어놓을 수 있다쳐도 같은 동네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보는 사이인데 말이다.


책을 많이 읽어서인지, 산전수전 다 겪어서 눈치도 빠르고 남의 심리를 파악하고 분석하는데 도사인 한 지인이 내게 남의 무장한 마음을 해제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정의 내렸다. 아무리 근엄하고 완고한 사람도 내 앞에 서면, 나의 쾌활하고 화통한 웃음소리 앞에서는 안심하고 마음을 연다는 얘기다. 또한 그 지인이 말하기를 내가 무척 수다스럽고 입이 싼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인 편이란다. 그러니까 해서는 안될 얘기는 절대로 안 한다는 것이다. 그건 지인 말이 맞다. 남에게 전하지 말라고 부탁 받은 말은 절대로 안 한다. 전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면 허벅지를 바늘로 찌를지언정 끝까지 비밀을 지켜준다. 


또 하나는 내가 남의 얘기를 참 잘 들어준다는 거라고 지인이 분석했다. 보통 본인과 상관없는 얘기는 10분 이상 넘어가면 흥미를 잃기 마련인데, 그래서 슬슬 딴 짓을 하기 시작하고 하품을 하게 마련인데 나는 끝까지 고개를 끄덕여가며 맞장구를 쳐가며 경청해 준다는 것이다. 설사 그게 몸이 비비꼬일 만큼 재미없는 이야기라도 나는 상대방이 얘기를 마칠 때까지 지루하다는 표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인에 의하면 위의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내게 마음을 터놓고 속얘기를 한다는 것이다.

지인의 말이 다 맞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러나 ‘생명의 전화’같은 상담소에서 상담자들의 고민을 분석해 발표한 결과에 ‘외로움’이 늘 우선 순위를 차지한 걸 보고 마음이 아팠던 것은 사실이다. 고해(苦海),그 자체인 삶에서 맘놓고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다는 것만큼, 깊은 속내를 털어놓을 대상이 없다는 것만큼 불행한 일이 또 있을까. 나는 내 주위사람들의 의자가 되고 싶다. 이민생활에서 오는 고민과 울분을 맘놓고 털어놓을 수 있고 지친 영혼을 잠시라도 위로 받고 쉬었다 갈 수 있는 큰 나무 그늘 아래의 의자. 


– 아파보니 알겠네

그동안 나는 주위 사람들로 부터 타고난 건강체력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었다. 일단 생김새가 소 한마리는 거뜬하게 때려잡겠다 싶을 정도로 단단하니까.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 나이 되도록 염색 안 할 정도로 머리카락도 새카맣고 근시이긴 하지만 돋보기 없이도 작은 글씨 잘 읽고 편식이 심하긴 하지만 여태껏 별 다른 병치레를 하지 않는 나는 참 강한 체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나의 체력은 타고난 것도 있지만 일 주일에도 몇 번씩하는 운동 덕분이라고 믿었다. 지금처럼 열심히, 꾸준히 운동하는 한 병원에 갈 일은 없을 거라고 자만했었고. 그런 내가 응급실에 갔다 왔다.

지인들과 식당에서 나오다가 넘어질 뻔했다. 갑자기 하늘이 피잉 돌아서. 오랜만에 진한 커피를 많이 마셔서 그러려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집에 돌아왔다. 소파에 앉는데 또 어지럼증이 왔다. 서둘러 누웠는데 누워도 온 방안이 빙빙 돈다. 서면 좀 괜찮아질까 싶어 서니까 더 빙빙. 눈 앞에 있는 모든 사물이 다가왔다가 멀어졌다가.

어지러움과 동반하는 증상이 메스꺼움과 구토. 급히 화장실로 뛰어가서 토하기 시작하는데 그 이후에는 물만 먹어도 토한다. 하루를 겨우 견디고 응급실에 갔다. 응급실에 가본들 뭘 금방 해주는 게 없다는 것을 알기에 억지로 버텨보려했으나 어지러운 증세와 구토가 호전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응급실은 만원이었고 의사들은 정신없이 분주했다. 독충에 쏘였는지 찐빵처럼 얼굴이 부풀어 오른 남자와 백도가 넘는 열로 헛소리를 하는 아이와 양수가 터졌다며 악을 쓰는 산모와 지금 당장 손을 써주지 않으면 쇼크로 죽을 거라고 울부짖는 담석환자들 틈에 나는 방치된 채 마냥 기다려야했다. 정말로 고통스러웠다. 물만 마셔도 토하기에 이틀을 굶은 속은 텅텅 비어 쓰리지, 응급실 안은 시베리아 벌판으로 춥지, 머리는 계속 빙빙 돌지, 속에 아무것도 없는 데도 불구하고 욕지기는 계속 올라오지. 만약 이런 증세를 평생가지고 살아야한다면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서너시간을 기다린 끝에 내 차례가 왔다. 왼쪽 귀에 다이아몬드를 쭈르륵 네 개나 박은 어린 남자의사는 내 증상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간호사가 미리 적은 차트를 그냥 건성으로 읽어보는것 같더니 일단 CT를 찍고 피 검사를 해봐야겠단다. 나는 의사에게 호소했다. 뭐든 다 해달라고. 뭐든 다 해서 이 죽일놈의 어지럼증을 멈추게 해달라고.

그러나 CT에서도, 피와 소변검사에서도 아무것도 나온 게 없단다. 그때서야 의사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어쩌면 뇌졸중일 수 있으니 MRI를 찍어보자고. 고맙기도 해라. 그 비싼 MRI를! 그렇지만 나는 뇌졸중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뇌졸중이라면 증상이 따라야 한다. 한쪽 몸이 저리거나 마비가 되거나 말이 어눌하거나 잘 안 보이거나. 내겐 어지럼증 외엔 전혀 그런 증상이 없었으니 말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건강보험이 참 좋은 게, 감기나 배탈 등 사소한 병을 치료 좀 받으려면 세월아 네월아 속터져 죽지만 일단 큰 병이 의심된다 싶으면 속전속결로 그 자리에서 다 진행된다는 거다. 몇십분도 되지 않아 MRI를 찍었고 내 예상대로 MRI에서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의사가 말했다. 일단 퇴원하고 약을 먹으면서 경과를 지켜보자고.

링겔을 두 병이나 맞고 병원문을 나왔다. 죽을 병은 아니라는 확신에다 링겔에 같이 투여한 약으로어지럼증과 구토가 많이 나아졌기에 한결 가벼워진 기분으로. 그때가 밤 열시. 응급실에 들어간 지아홉시간만이었다.

집에 돌아와 의사 지시대로 구토와 어지럼증 멈추는 약을 꼬박꼬박 복용하기를 일 주일. 심한 증상은 없어졌지만 아직도 갑자기 몸을 확 움직인다든가 고개를 젖히면 숨은 복병처럼 어지럼증이 나를 덮친다.

예전, 중앙일보 칼럼 쓸 때부터 팬레터를 보내오는 한 할배가 했던 말이 있다. ‘신비하고 신기한 일을 일컬어 기적이라고 하는데요. 기적이 딴 게 아니예요. 이 땅에 내가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것, 바로 그게 기적입니다’.

할배의 말이 맞았다. 아파보니 알겠다. 다른 게 기적이 아니라 그 누구의 부축도 없이, 뭘 짚지 않고혼자 설수 있고 탄탄한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기적이라는 것을.

이계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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