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숙 작가의 살아가는 이야기] 후회합니다

몇 년 전. 세상 떠난 시어머니에 대해 쓴 글을 읽으신 독자들은 아실 겁니다. 우리 시어머니가 얼마나 물건에 애착을 많이 가진 사람이었던지, 얼마나 좋은 물건만 쓰면서 평생을 산 사람인지. 정리정돈을 잘해놔서 많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실상은 물건들의 정글 속에 갇혀 산 사람이었다는 것을요. 시어머니가 세상 떠나고 난 후 집안을 둘러보던 나는 너무 기가 막혀서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버렸다는 것 아닙니까.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살림살이들을 다 처분할 생각을 하니 앞이 아득해져서 말이지요. 정말 질리게 많았어요. 옷장 구석구석, 찬장 구석구석, 차고 구석구석에 산 같이 높이 쌓여 있는 옷, 구두, 그릇, 장신구, 레코드, 책, 장식품, 소품…

내게는 아무 흥미가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특히 그릇들은 내 스타일이 전혀 아니었거든요. 나는 유리를 선호해요. 우리 집에 있는 접시나 그릇들은 전부 유리입니다. 강화유리 아니면 크리스탈. 아무 무늬 없는 간결하고 깨끗한 모양의. 둥근 것도 싫어요. 사각형이 좋습니다. 나와는 백프로 상반된 시어머니의 취향. 시어머니는 은제 촛대에 불을 켜지 않고 식사를 한다는 것은 절대 용납이 안 될 정도로 예절과 품격과 형식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찻잔 받침 없이는 티 한 잔 마시지 못했고요. 풀 먹여 다리미로 다린 빳빳한 천 냅킨을(종이 냅킨을 쓰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어요)평생 쓰며 산 고상하고 우아한 사람이었지요. 고색찬란한 60년대, 70년대 미국영화 영화 속의 귀부인이라고 보면 됩니다, 우리 시어머니는. 그래서 주인을 닮아 그릇들도 모두 귀부인처럼 화려하고 현란합니다. 클래식의 공주풍입니다. 금박 은박 테두리의 울긋불긋한 꽃 무늬의 본 차이나인 데다가 구불구불, 곡선으로 이루어진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그릇들은 모두 백년이 넘은 고급품이었어요. 시어머니가 직접 구입한 것도 많았지만 그녀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부모가 변호사를 지낸 상류층이었답니다. 그러니까 시어머니의 어머니는 남편이 돈을 잘 버니까 전업주부로 살림만 했는데 아주 고급 취향을 가진 사람이었대요. 물론 무남독녀인 시어머니도 어머니의 취향을 그대로 물려받았겠지요. 좋은 것만, 비싼 것만 선호했어요. 그래서 접시 하나, 포크 하나가 시중에는 쉽게 구할 수 없는 귀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릇 쪽으로 전혀 일가견이 없는 내 눈에도 예사물건이 아니다 싶은 것들이요. 내 취향은 아니었으되 진짜 없애버리기엔 아까운 물건들도 꽤 많았는데요. 그 중 몇 세트나 되는 설탕과 프림 그릇과 찻잔받침까지 딸린 티 팟은 정말로 예술품이 따로 없다 싶을 정도로 정교했습니다. 붉은 장미꽃잎과 덩굴이 장식된 티팟 한 세트는 얼마나 아름답던지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했습니다. 따로 빼놓을까 했었지만 일회용 티를 머그잔에다 그냥 풍덩 담가 우려 마시는 내가 언제 그걸 쓰겠어요.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습니다.

장례를 치르자마자 물건들과의 전쟁이 시작되었지요. 시어머니를 돌봐주었던 두 간병인에게 우선권을 주고 마음에 드는 것들을 고르게 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그라지 세일. 앞으로 사용할 일이 없는 물건들이나 원하지 않는 물건은 집에 두지 않는 내 철칙에 따라서. 다행히 남편도 내 의견에 동조했습니다. 남편이 원하는 물건들 몇 개만 빼놓고는 모두 없애버리자는데 둘이 의기투합이 되었습니다. 평생 가도 쓸 일 없는 물건들을 이고 지고 와서 집에다가 쟁여놓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괴로웠어요.

시어머니 집에서 주말마다 한 달 꼬박 그라지 세일을 하고 나머지는 우리집으로 가지고 와서 이틀 동안 했는데 매 회마다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물이나 잡동사니같은 것은 거의 없이 백 몇개 짜리의 세트 그릇들과 벨벳으로 장식된 오동나무 상자 안에 든 은 나이프와 포크 세트, 고급 도자기 장식품들. 오래된 그림 등 모두다 쓸만한 것들, 고급품들이었으니. 그런 것들을 모두 먼지같이 하찮게 팔았으니 미친 듯이 사람들이 몰려온 것은 당연하지요.

은제 포크 나이프 세트도 40불에 내놨는데 어떤 백인 할머니가 아주 반색을 하며 사겠답니다. 자기가 평생 써오던 거랑 똑같은 거라며. 어찌어찌하여 자긴 것은 잃어버리고 구부러져 짝이 안 맞는데 마침 잘 되었다면서. 그런데 지갑을 확인하더니 외마디 비명을 질러요. 현찰이 25불밖에 없대요. 나는 할머니에게 말했습니다. 25불에 그냥 가져가라고. 대신 기쁘고 행복하게 잘 써달라고. 이베이에 수백 불에 나온 은제 나이프 포크 세트는 그렇게 단돈 25불에 팔렸습니다. 모두 헐값에 헐값에. 원래 가격의 몇 십 분의 일, 몇 백분의 일 가격에 팔았는데도 그라지 세일로만 거의 만불 가량의 돈이 생겼으니 얼마나 살림살이가 많았는지 짐작이 가지요.

시어머니가 자기 몸처럼 귀히 아끼고 신봉하던 물건들을 다 없애버린 것은 죄책감이 드는 일이긴 했지만 정말로 속은 시원했습니다. 안 팔린 물건들 몇 박스를 도네이션 센타에 싹 갖다가 부려놓고 오는 날은 날아갈 듯한 후련함과 개운함에 만세를 다 불렀다니까요. 그런데요. 세상일이란 게 그렇게 잘 했다로만 끝나는 게 아니다라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네요. 세상은 뜻밖의 일의 연속이고 변수의 연속이며 늘 내 어리석음에 대한 후회와 회한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 일이었습니다. 생전 쳐다보지도 않는 남편의 취미방(별별 귀신딱지가 다 모여있는)에 들어갈 일이 있었습니다. 구석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큰 종이박스가 눈에 뜨이더군요. 시어머니의 물건들 중, 나중에 쓸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면서 남편이 이것저것 주워 담아 온 박스. 3년이 지나도록 정리를 안 하고 있는 박스. 나 역시 내 것이 아니니 건드려보지도 않은 박스입니다. 무심코 열어보았습니다. 청동으로 만든 샴페인 잔,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구두 주걱, 어릴 때 사진이 든 은제 액자 등등 온갖 잡동사니들이 뒤죽박죽이 되어 고개를 내밉니다. 그 틈을 비집고 하얀 찻잔 하나가 옆으로 누워 있어요. 그게 왜 그 박스에 들어 있었을까요. 짝도 안 맞는 찻잔, 한 개 뿐인 찻잔을 쓸 일이 뭐가 있겠어요. 나는 그것을 집어 들고 나왔습니다. 갖다 버리려고요. 그러다가 나는 그 찻잔을 비누로 말갛게 씻었습니다. 쌀통에 넣어놓으려고. 아구리가 넓어서 쌀 풀 때 유용하게 쓰일 것 같아서요. 마른행주로 물기를 닦아 놓으니 날렵한 백조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같아 보입니다. 꽤 아름다운 자태입니다. 일단 그 잔에다가 커피를 탔습니다. 찻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가는데 어머나, 손잡이 부분이 손가락에 착 감깁니다. 흔히 말하는 ‘그립감’이 기차게 좋아요. 그러고 보니 입술이 닿는 부분은 물론, 전체적으로 잔이 종잇장같이 얇아서 깃털처럼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가 않아요. 얼른 커피를 다 마시고는 밑을 뒤집어 봤습니다. NORITAKE! 노리다케였습니다! 그릇의 명품, 노리다케. 노리다케가 그릇 중의 최고라는 명성을 그동안 많이 들어보긴 했지만 직접 써 본 것은 처음입니다. 여자들이 열광할 때는 이유가 있었네요.

이제와서 말이지만 나는 시어머니의 유난을 속으로 많이 한심해 했었습니다. 행여 이라도 빠질까봐 금박이라도 벗겨질까봐 밥을 먹는 것 외에는 아무도 자기 그릇에 손 못대게 했던 시어머니. 남의 손을 믿지 못하고 설거지 기계를 믿지 못해 늘 손수 설거지를 하던 시어머니. 그렇게 조심했는데도 깨지는 그릇이 생기면 그녀는 세상이 무너진 것같이 애통해하고 절통해했지요. 그길로 이베이에 들어가서 서치에 서치를 거듭한 끝에 똑같은 것(똑같은 게 없으면 비슷한 것)이라도 비싼 돈을 주고 사서 짝을 맞추어 놓고는 했습니다. 없으면 없는대로 쓰고 정 안 되면 새 걸 사면 되지, 물건에 별 애착이 없는 나는 그런 시어머니 유난스러움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한낱 그릇에 집착하는 고집불통의 노인네라고 비웃었더랬습니다.

하루에 두 번, 나는 이 노리다케 잔으로만 커피를 마십니다. 시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행여나 이라도 빠질까, 애지중지하면서. 이 노리다케의 진가를 알고부터는 그동안 내가 쓰던 투명 유리잔으로 손이 가지 않네요.

요즘 나는 후회가 많습니다. 너무 성급하게 함부로 시어머니의 그릇들을 다 없애버렸다는 후회감. 이렇게 쓰기 좋은 것인 줄 알았으면 그 중 몇 개만이라도 남겨놓을 걸하는 후회감.

이계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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