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숙 작가의 살아가는 이야기] 그들은 왜 결혼했을까

오랜만에 남편과 햄버거를 먹으러 갔습니다. 남편은 주문하러 가고 나는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가까이서 한국말이 들립니다. 나랑 대각선으로 앉은 사십 중후반 쯤의 부부. 햄버거를 먹으면서 언쟁을 하고 있어요. 크게 언성을 높이지는 않았지만 둘의 불그락 푸르락한 얼굴 표정으로 봐서 감정이 극에 달한 것 같습니다. 남편이 고함을 지르고 싶은 걸 간신히 참는 것 같이 이를 앙다물면서 아내에게 말하더군요.
“당신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먼저 잘못을 시인한 적이 없어. 늘 남 탓이야. 어머니 탓, 아이들 탓, 그리고 내 탓. 누군들 탓을 안 하고 싶은 줄 알아. 당신은 완벽한 줄 알아. 집구석 조용하게 하려고 그냥 참고만 있었더니 항상 사람을 바보등신 취급하고 있어…”
남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프킨을 던지는 동작과 함께 튀어나오는 아내의 대답.
“당신이 제 할 일을 똑바로하면 내가 왜 탓을 하겠어? 중간에서 역할을 제대로 했으면 일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것 아냐?! 정말이지 지겨워. 끔찍해. 이제는 해방되고 싶어. 그러니까 이제 제발 좀 그만하고 헤어졌으면 좋겠어. 나도 지쳤어. 지쳤다고!”
남편의 목소리가 많이 높아졌습니다.
“그놈의 헤어지잔 소리. 헤어지자면 못 헤어질 알아? 그래, 헤어져 당장. 당장 헤어지자고! 지금 바로 법원으로 갈까?”
이어 들리는, 감정을 최대한으로 배제한 것같은 아내의 대답입니다.
“그래. 정말로 기다렸던 바야. 당신을 만나서 이날 이때까지 고생만 지지리했는데 오늘로서 그 고생이 끝나려나 보네…”
차분하지만 얼음같이 냉정한 목소리. 머리카락에 얼굴이 가려서 보이진 않았지만 표정도 목소리처럼 싸늘할 것 같았습니다.

가만 들어보니 방학을 맞아 한국에서 ‘개떼같이 들이닥치는(아내의 표현)시어머니와 시누이 가족’이 싸움의 원흉인 것 같았습니다. 매년 여름, 자신들의 일상을 흐트려 놓는 시어머니와 시누이 가족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는 아내. 걔네들이 오면 그냥 오냐. 바리바리 온갖 좋다는 것 다 싸들고 오고 수고비로, 기름값으로,식비로 엄청난 돈을 쓰고 주고 가는데 왜 불만이냐. 네 친정식구들은 빈손으로 달랑달랑 와서, 일단 왔다하면 서너달을 뭉개고 가는데 그까짓 한 달도 못참느냐며 아내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남편. 예전, 둘의 유학비와 생활비를 친정에서 다 전담한 건 까맣게 잊었냐고 힐난하는 아내. 꼴랑 두 학기 학비 좀 보태주고 말끝마다 나오는 그놈의 공치사, 정말이지 이제는 듣기 진절머리난다는 남편의 항변과 질타.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헤어지잔 이야기가 나오면서 둘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합니다. 급기야는 남편의 입에서 쌍시옷 들어간 욕도 나옵니다. 아내도 질새라 같은 욕으로 맞받아칩니다.

주문을 마친 남편이 돌아오는 게 보여서 나는 얼른 일어났습니다. 남편의 소매자락을 끌고 뒷쪽 구석진 자리로 옮겼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 싸움구경이라지만 젊었을 때 말이지 나이들어서는 아닙니다. 마른 스폰지 물 빨아들이 듯 남의 일에 감정이입 잘하는 나는 이제 싸우고 다투는 장면을 대하는 일이 크게 스트레스로 다가옵니다. 가능하면 즐겁고 행복하고 유쾌한 것만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햄버거를 먹는 내내 증오와 미움과 원망이 가득 서린 목소리로 죽일 듯 달려들던 부부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A 씨의 집으로 마실 갔습니다. 오랜만의 마실입니다. 워낙 멀기도 하지만 A 씨가 우리집에 자주 놀러 오기에 굳이 내가 갈 필요가 없어서.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찮습니다. 얼음장같이 냉랭합니다. 내가 몇 마디 실없는 소리를 해봐도 분위기가 나아지지 않습니다. 아침부터 대판 싸우는 중인데 나로 인해 싸움이 중단된 상태. 그런 상태에서 나의 실없는 소리가 먹힐리가 있나요.

그 와중에도 아내가 뭐라뭐라 몇 마디합니다. 그러자 갑자기 남편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나옵니다. 조폭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무지막지한 욕설. 물론 자기 아내 A 씨를 향해서입니다. A 씨로부터 남편이 걸핏하면 욕설을 한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직접 내가 들으니 앞이 노래지면서 위기감이 몰아치더군요. 큰일 났구나, 이 부부. 갈 데까지 갔구나하는 위기감.

나는 버둥대는 A 씨의 남편을 억지로 밀어서 뒷뜰로 나갔습니다. 그냥 두었다간 지금까지 한 욕보다 더한 욕을(더 심한 욕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A 씨에게 퍼부을 것 같아서. 담배를 피워 무는 A 씨 남편에게 나는 일장연설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비겁한 남자가 아내에게 물리적인 폭력, 언어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다. 당신은 물리적은 폭력을 쓰지 않았기에 괜찮다고 할지 모르지만 언어 폭력 또한 상대방 영혼을 죽이게 하는 일이다. 욕을 섞지 않고도 얼마든지 당신의 뜻을 전달할 수 있을 텐데 오늘 정말 당신한테 실망했다… 극도로 흥분해 있고 격앙돼 있는 그에게 내 말이 들리지 안 들릴지는 이차적인 문제. 불안에 떨고 있는 아내를 위해서라도 A 씨를 나무라야할 것 같았습니다.

반대 성격의 남녀가 만나야 잘 산다는 말이 있지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한쪽에 불충분한 점이 있으면 다른 반대쪽이 보완하고 보충할 수 있으니까. 오랜 세월동안 A 씨 부부를 대하면서 느낀 점, 둘은 결혼을 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부부가 너무 똑같아서요. 둘 다 엄청 허술합니다. 하나라도 좀 빈틈없고 신중하고 야무져야 하는데. 그러니까 한 사람씩 놓고보면 인정 많고 착하고 선하고 경우바르고 후하고 나무랄데 없이 좋은 사람들인데 둘이 붙여놓으면 죽도 밥도 안 됩니다. 그러니 집안살림이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정리가 안 되어 있어요. 처리가 제대로 안 되어 있어요. 항상 어지럽고 어수선합니다. 재정적인 면에서나, 아이들 양육과 교육에서나, 비지니스 운영에서나, 가족간의 관계에서나. 둘다 죽겠다고 열심히 일을 하는데 돈은 모이지 않고 크레딧카드는 항상 한도선까지 차 있고. 젊었을 땐 그럭저럭 꾸려나가다가 세월이 한참 흘러 은퇴할 나이가 되어서도 개선되지 않으니 둘다 스트레스가 목에까지 꽉 찬 상태. 그래서 걸핏하면 소리지르고 싸우더니 급기야는 욕까지 해대는지경까지 오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또 너무 반대로 만나도 안 되겠구나하는 표본의 부부가 있습니다. 지금은 아내와의 관계에 있어 완전히 포기상태에 이르렀다는 한 할배. 어쨌거나 끝까지 맞추어 살아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는 할배입니다. 안 맞아도 안 맞아도 어쩌면 그리도 안 맞을까 싶었던 부부였습니다. 그야말로 흑과 백, 물과 기름처럼 안 맞았던 부부. 섬세하고 예민하고 여성적인 면이 많은 할배가 장군처럼 씩씩하고 거칠고 드세고 늘 바깥으로만 도는 아내와 사는 일이 얼마나 고됐을까요. 그래서 늘 싸웠습니다. 부부싸움을 하면 경찰이 출동하기(이웃의 신고로)다반사. 한번은 얼마나 격렬하게 싸워댔던지 경찰이 헬리콥터까지 띄울 정도였다고(할배의 고백으로 안 사실)합니다.

싸우다가 싸우다가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변호사를 찾아갔다는 할배. 변호사가 ‘아내와 반드시 이혼해야 할 점‘을 열 가지 써보라고 하더랍니다. 숨도 안 쉬고 단숨에 서른 몇 가지를 써내려갔다는 할배. 정신을 차려보니 100가지를 넘게 쓰고 있더랍니다. 변호사도 기가 찼는지 허허 웃더라고. 그러나 이혼도 팔자에 있어야만 하나봅니다. 같이 살지 못할 이유가 백가지가 넘어도 끝내 이혼을 못하고 이제는 체념한 채 서로 그냥 소닭보듯하며 살고 있는 할배입니다. 그가 말합니다.
“스물 여섯에 결혼해서 50년동안 싸움만 하다가 내 인생이 다 가버렸네. 사람은 고쳐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진즉 깨달았으면 내 삶이 조금 수월했을 수도 있을 텐데. 뒤돌아보면 이 사람과 살면서 행복했던 때가 단 한순간도 없었던 것 같아. 우리는 왜 결혼했을까. 싸우려고 결혼했을까…”

한 번밖에 없는 인생. 행복까지는 바라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불행하지는 않아야 할텐데. 맞지 않는 배우자와 살면서 평생 불행했던 사람들이 내 주위에는 참 많습니다. 차라리 혼자 살았으면 외롭기는 했으되 불행하지는 않았을 사람들. 그들은 왜 결혼했을까요.

이계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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