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숙 작가의 살아가는 이야기] 내 친구가 췌장암이랍니다

작가님, 어찌하오리까 하고 상담을 요청하는 이들의 사연을 들어 주고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고자 카운슬러 클래스까지 이슈했습니다만 가면 갈수록 남의 가슴 아픈 삶을 전해 듣는 일이 힘에 부칩니다. 몇 시간을 같이 울고 분노하고 안타까워하고 나면 몸의 진이란 진이 다 빠지는 것 같아요. 특히 꼼짝없이 일방적으로 듣고만 있어야 하는 전화상담은. 오죽했으면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심중을 털어놓고 싶을까하는 안쓰러움에 그동안 기쁘게 다 응해줬었는데요. 이제는 전화번호가 적힌 이메일을 받으면 겁부터 납니다.

지난달, 무당친구의 번호가 전화기에 떴을 때도 나는 겁부터 났었습니다. 한 번 전화했다 하면 건전지 용량이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붙들고 있는 친구를 잘 알기에. 얌전하고 조용한 성격이었던 친구는 신이 내린 이후부터 성격이 확 바뀌었습니다. 말이 얼마나 많아졌는지. 시집 식구들, 자식, 남편에 대한. 그리고 신당을 찾아오는 손님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실타래의 실 풀리듯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나랑은 별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염없이 듣고 있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겁이 나지. 그래서 친구로부터 전화가 오면 살갑지 못한 목소리가 나가게 됩니다. 이번에도 역시 같은 이유의 전화려니 짐작했던 나. 한숨을 참으며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왜?”

아무리 성가신 전화였어도 그렇지. ‘왜’라는 첫 마디로 전화를 받다니. 나의 무뚝뚝한 목소리에 놀랐나 봐요. 잠시 말이 없던 친구는 헛기침을 하며 약간 숨을 고르는 것 같더니 말했습니다. 나 췌장암 3기래. 전화기를 든 채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부르짖듯 물었습니다.

“무슨 말이야!? 작년 가을에 봤을 때도 멀쩡했는데!?”

늘 그랬듯 두 시간 가까이를 버스를 갈아타며 내가 묵는 인천공항 근처 호텔까지 찾아왔던 친구였습니다. 봄에 봤을 때보다 살이 더 쪄있었습니다. 소화가 안 된다고 하길래 너무 살쪄서 그렇다고 운동하고 소식하라고 핀잔을 주었었는데. 그랬는데 췌장암이라니! 더구나 3기? 눈물이 줄줄 흘러내려서 내 앞섶을 적시고 부엌바닥을 적셨습니다. 친구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전혀 짐작도 못한 채 왜,하고 귀찮음을 숨기지 않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던 내 경솔함이라니! 나는 후회로 가슴을 쳤습니다.

친구가 말했습니다. 소화가 안 되는 것외엔 전혀 다른 증상이 없었다고.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눕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할 만큼 견딜 수 없을 지경으로 등 쪽이 아파서 병원에 갔다가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고. 다행히 암이 췌장의 머리쪽에 있어 잘라내는 수술을 마쳤는데 앞으로 열 두번의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5, 6년전. 직장동료로 알게 되어 친하게 지내는 동생이 자궁암 말기 진단을 받았더랬습니다. 수술한 후 아홉 번의 항암을 한다고 했는데 워낙 암이 많이 진행된 상태라 항암제가 듣지 않았던지 대여섯번 받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말기암도 아홉번이었는데 왜 친구는 열 두번을?그 힘든 항암치료를? 폐암으로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고 지금은 건강해진 한 친구는 말했습니다. 항암치료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그야말로 딱 죽어버리는 게 낫다 싶을 정도의 심한 고통이라고. 왜 안 그렇겠어요. 몸의 세포를 말려 죽이는 시술인데.

일단은 수술을 잘 마쳤다는 데에 희망을 걸고 항암치료에 임할 거라는 친구. 내가 해 줄 말이 뭐가 있겠어요. 마음 굳게 먹으라는 말 밖에. 평생 착하게 살아왔으니 네가 모시는 아기 동자인지 무시깽이인지가 돌봐서라도 쾌차할 거라고. 다른 때 같으면 내 비아냥에 단호하게 뭐라하는(아기동자가 노한다고)친구였습니다만 몸도 마음도 지쳐서인지 아뭇소리 안 하더군요. 정말이지 나는 친구가 모시는 신에게 간절하게 빌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당신이 영험한 존재라면 이날 이때까지 고생만하고 살아온 내 친구를 그냥 보고 있지만 말아달라고. 뜨거운 여름날, 흙마당에 뿌려진 물이 금방 마르듯 친구 몸에 자리잡은 암세포를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말려달라고.

우리 속담에 ‘가난한 놈이 바지 두 벌 갖게 되면 탈 난다 ’는 게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지리 고생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형편이 개선되면 무슨 횡사가 생겨도 생긴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내 주위에도 그런 사람들이 꽤 있어요. 내 무당친구도 그런 편에 속합니다. 친구는 결혼하던 날부터 작년까지 정말이지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살았습니다. 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촌구석의 7남매 장남의 며느리로 들어간 것이 고생의 시작이었지요. 시집식구들, 특히 시어머니의 악독함은 필설로 다 표현을 못합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그렇게 악독하고 심술맞고 못된 인간은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그런. 한 말도 안 했다 하고 안 한 말도 했다하고 별별 모함에 인격모독에 거짓 누명을 씌우면서 친구를 괴롭히며 악다구니를 치던 노인네가 작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이제 좀 마음 편히 살아보나 했는데 몹쓸병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30년 넘게 시어머니로부터 계속 받아 온 스트레스가 켜켜이 쌓여 발병의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시집살이 때문이 아니더라도 친구의 삶은 좀 기구합니다. 멀쩡한 가정주부에서 무당이 된다는 게 쉬운 삶은 아니니까요. 나는 친구가 지금까지 성형수술을 잘못해서 신이 내린 줄 알았는데요. 알고보니 집안 내력이었어요. 시집 쪽으로 그런 경향이 있었다고 하네요. 시집쪽이든 친가쪽이든 집안에 무속인이 있으면 그 밑의 자손 누군가가 그길을 걸어야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또한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도 어쩌면 그쪽 길로 갔을 지도 몰랐습니다. 작년 봄에 친구가 털어놓은 이야기입니다. 현 남편과 선을 보기 위해 서울에 올라간 사이 시골에 사는 오빠가 대구에 있는 친구의 자취방을 방문했더랍니다. 오빠는 오빠대로 동생을 시집 보내기 위해 신랑감을 주선해서 말입니다. 전화가 없던 시절이었으니 미리 연락을 못하고 무작정 동생을 찾았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갔던 오빠. 나중에 알고보니 오빠가 친구에게 맺어주려고 했던 그 신랑감의 시어머니 자리가 무당. 그 이야기를 전해주면서 친구가 말합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무속인이 될 팔자였나 봐…

울고 또 울면서 친구와 힘겨운 통화를 마치고 그길로 ‘췌장암 3기’를 검색했지요. 수술이 잘 되었으므로 열두 번의 항암만 잘 마치면 회생할 것 같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던 친구와는 달리 수술을 해도 가장 예후가 안 좋은 악성 암이라고 나옵니다. 증상이 전혀 없기에 좀 아프네, 하고 병원에 가면 벌써 말기로 접어드는 경우가 많다고. 짐작한대로였고, 지금까지 들은대로였습니다. 잠깐 그쳤던 눈물이 또 쏟아졌습니다.

미시유에스에이 독자들의 도움을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미국 50개 주를 넘어 캐나다까지 포진해 있는 회원들. 연령대도 다르고 삶의 상황이 다르고 경험이 다른 여성들도 구성된 미시유에스에이 회원들. 본인이든 지인이든 형제 자매든 췌장암에 걸려 투병한 사람이 있지 않겠어요. 의료인들의 전문적인 지식과 정보도 좋지만 직접 췌장암을 겪어본 사람들의 생생한 경험담이 필요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글을 업로드하기가 무섭게 댓글이 줄줄 달리더군요. 본질은 파악하지 못하고 단어 하나, 문장 한 줄로 사람 속을 뒤집는 사람이 많아 걸핏하면 옥신각신 싸움판이 나지만 어려움에 놓인 사람에게는 으쌰으쌰 발 벗고 나서기도 잘 하는 주부들이었네요. 기대한대로 췌장암과 가까이 해본 사람들의 생생한 경험담이었습니다. 그런데요. 나는 다시 비탄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췌장암을 이겨냈다는 글이 하나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모두 다 안 좋은 쪽이었습니다. 3기, 4기 췌장암 진단을 받은 사람이 열 명이면 열 명 다 이겨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수술도, 항암도, 대체요법도, 민간요법도 소용없었다고. 그.렇.지.만. 친.구.의. 쾌.차.를. 바.란.다.고…

가끔 소식을 주고 받는 한 독자. 의료계통에서 근무하기에 누구보다 이 병을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이 독자도 절망적인 말을 합니다.

-저도 예후가 안 좋은 암이라 처음에 작가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여건에 되면 빠른 시일내에 친구를 만나러 가시라고 말을 할까 생각을 했었어요. 췌장 자체가 워낙 몸 속 깊숙이 있는데다 잘 표가 나지 않아서 발견 되었을 땐 거의가 진행이 많이 된 상태에서 발견이 되거든요. 진행도 진행이지만 진통제도 잘 듣지 않아요. 그래서 진통이 크면 차라리 호스피스로 케어를 받으시는 게 더 나을지도 몰라요. 어짜피 수술도 거의 의미가 없는 게 대부분이고. 슬프게도. 의사랑 잘 상의 하셔서 남은 시간 많이 고통스럽지 않으시기를 바래요. 달리 희망적인 말을 해 드릴수 없는게 안타깝네요. 부디 작가님도 건강 더 잘 챙기시고.친구분은 마음의 준비를 하시고 남은 시간 조금이라도 더 함께 시간을 나눌 수 있도록 해 보세요…

나는 곧 친구를 보러 갈 겁니다. 내가 어디에 머물고 있든지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반갑게 달려와 주던 친구. 이제는 내가 달려갈 차례입니다.

이계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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