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숙 작가의 살아가는 이야기] 여자 잘 만난 남자

강아지랑 동네길을 걷다가 만난 S. 그냥 평범한 아이인 줄 알았는데 한국의 유수대학 출신에다 미국에서 석사과정까지 마친 재원이었습니다. 집안도 나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전직 교수에 현재는 공인회계사. 열 살 가까이 나이 차이 나는 동생 하나만 둔 귀한 맏딸이 바로 S였습니다. 부모로부터는 물론, 주위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면서 오냐오냐 자랐을 텐데도 아이의 심성이 착합니다. 순하고 겸손해요. 유머감각 있어 주위를 웃길 줄도 알고 무척 솔직합니다. 예의 또한 발라요. 밥 먹으러 올 때 빈 손인 법이 없습니다. 집에 있는 비스킷이라도 들고 옵니다. 인물도 빠지지 않아요. 차리고 나가면 누구나의 눈길을 끌만합니다. 게다가 나랑 내 주위사람들이 모두 엄마뻘, 할머니, 할아버지 뻘인데도 낯 가리지 않고 잘 어울려줍니다. 이런 아이를 어떻게 싫어할 수 있나요. 나랑 주위사람들은 S에게 홀딱 반했습니다. 맛있는 거라도 하면 S를 못 먹여서 안달을 합니다. 바빠서 못 온다고하면 남겨놨다가 다음날에라도 주려는 극성을 부립니다.

그랬는데요. 미국의 같은 대학에서 만나 결혼했다는 S의 남편을 보고 우리는 의아해마지 않았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이 선호하지 않는 나라 출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일부 지역에서는 맨발로 생활할 정도로 문명이 발달되지 못하고 가난한. 여성의 인권이나 지위가 세계에서 제일 하위권인. 여성에 대한 폭력이 허용되고 ‘정략결혼’이 성행하는 미개한 나라요.

생긴 건 아주 영민하고 똑똑해 보입니다. 또한 직업도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알만한 대기업의 IT계통에 급료도 높습니다. 그렇지만 아쉬웠어요. S정도면 얼마든지 최상위 조건을 가진 한국남자를 골라서 결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이왕이면 한국인과 하지. 아니면 백인이나 우리랑 같은 동양인과 하든지.

곱게 키워 미국까지 유학보낸 딸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꺼려마지않는 인종의 남자와 결혼한다 했을 때 부모의 심정은 어땠을까, 감정이입까지 해가면서 안타까와 했습니다. S가 어련히 알아서 한 결혼이었겠습니까. 심사숙고해서 선택한 반려자였겠지요. 그렇지만 우리들의 오지랍은 그렇게 넓었어요. 아니, 오지랍이 아니라 진정으로 S를 생각하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한 지인은 아예 대놓고 S에게 말합니다. ‘네가 아깝다’고요. 예에, 맞아요. 우리는 S가 아깝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요. 아니었습니다. 우리들의 염려와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S의 남편을 몇 개월 지켜본 바, 그는 남편으로 최고였어요. 더할 나위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요리, 청소, 세탁 등 집안 일 잘하고 알뜰하고 화 잘 안 내고 돈 잘 벌고 오직 S만 예뻐하면서 S가 원하는 건 뭐든지 다 해주고. 공주대접을 해주고 있었어요. 결혼한지 꽤 되었는데도. 그러면 된 것 아닙니까. 뭘 더 바랍니까. 요즘 나와 지인들은 S를 만날 때마다 우스개소리로 말합니다. 네 남편이 너를 잘 만난 줄 알았더니 네가 남편을 잘 만났구나!

20여년 전. 내 결혼 소식이 알려지자 동네가 뒤집어졌습니다. 혼자 빌빌대다가 늙어죽을 줄 알았던 이계숙이가 결혼을 한다니 놀랄 수밖에. 왜냐면 당시 내 상황은 정말이지 최악도 최악도 그런 최악이 없었을 정도였으니까요. 1미터 50을 겨우 넘기는 작은 키, 메기를 닮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못생긴 얼굴. 게다가 직업도 변변찮았고 모아놓은 돈도 없었고 학벌도 없었습니다. 1에서 10까지 점수를 매기자면 0이 될 정도의 비루하고 가난하고 초라했던. 밖으로 나가는 취미조차 없어 휴일이면 굴속같이 어두컴컴한 아파트에 엎드려만 있던. 오죽하면 그 푸르고 빛나던 나이에 사귀는 남자하나 없었을까요. 그렇게 별볼일 없던 이계숙이가 결혼을 한다니 그것만으로도 뒤로 넘어갈 정도로 놀라운 소식인데 남편이란 사람이 인물도 좋지(몇 번 얘기했지만 남편은 영화 ‘귀여운 여인’에 나온 리처드 기어같이 생겼더랬어요. 세월따라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학벌 좋지, 집안 좋지, 인품좋지, 돈 쓸 줄 알지, (당시 이 지역에서는 한국학교 건물을 건립하기 위한 모금운동이 한창이었는데 거기에 큰 돈을 척, 쾌척했어요. 물론 내 권유에 의해서)게다가 직업도 누구나가 선호하는 금융계통 IT 전문가라니 말입니다. 신데렐라가 따로 없었습니다. 천지가 개벽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조합이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결혼한 지 얼마 후, 내가 두껑열리는 독일제 스포츠카를 타자 다시 한 번 한인사회가 뒤집어졌어요. 싱글 때는 한달 아파트값이 될까말까한 신문사 월급으로 하루하루 연명하기에도 급급해 고물차를 타고 다녔었거든요. 당장 길에 갖다놔도 누구하나 건드리지 않을 상태의 오래된 누더기 차.

그때 정말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은 말. 이계숙이가 남편 잘 만났다는 말. 잘 난 데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는 이계숙의 어디에 복이 들었길래 이런 최상의 조건을 갖춘 남자를 만났냐는 말. 한 할배는요,(그때는 할배가 아니었지요) 내게 대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에서라면 시장에서 갈치장사를 하거나 포장마차에서 호떡이나 굽고 있어야 할 이계숙이가 남편 하나 잘 만나니까 단숨에 신분상승을 하네…”
그런 말을 듣고도 하하하 웃었네요, 내가. 왜냐면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마흔이 되도록 독신을 고집해 부모와 주위의 걱정을 한몸에 듣던(지금은 한인들의 의식이 독신도 인정하는 분위기로 바뀌었지만 당시만해도 혼기넘어 결혼하지 않는 여성은 흠이 있는 걸로 치부했음)한 여성은 이계숙의 남편같은 사람이 나타나면 당장 결혼하겠다고 말하고 다닐 정도였다면 말 다했지요.

사실은요. 남들이 뭐라해도 나는 1등 아내감이라는 것을 내가 알고 있었습니다. 임자를 못 만났을 뿐이지 언젠가는 나의 진면목이 빛을 발휘할 것이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어요. 인물이나 학벌이나 직업 등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은 내세울 게 없지만 살림 잘 하고 남편을 우선으로 보필 잘할 자신이 있었거든요. 내가 가진 이 진면목을 알아주고 나랑 결혼해 주는 남자는 진짜 복 받은 남자다라고 혼자 자신만만했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을 만났지요. 그리고 1년 후에 결혼했고 집을 샀고 우리집을 사람들에게 오픈(동네반장 노릇하던 아버지를 닮아 나는 집에 사람들이는 걸 엄청 좋아합니다. 잘 안 나가는 대신 사람들들 불러들입니다)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우리집에 와 본 사람들의 나를 보는 눈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을 잘 만날 줄 알았더니 남편이 아내를 잘 만났네’하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 대표적인 인물이 우리집에서 한 블럭 떨어진 곳에 살던 Y씨입니다. Y씨의 눈에는 내가 아주 보잘것없고 하찮게 보였을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Y씨의 딸은 약사입니다. 그것도 주정부 산하 감옥의 죄수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위는 변호사입니다. 둘의 연봉이 어마어마하답니다. 그래서인지 늘 기고만장하고 당당한 Y씨. 처음 몇 번 우리집에 놀러 와서 하던 소리가 예의 그 소리. 약간의 고까움을 담은 이계숙이가 남편 잘 만났네하는 소리. 이후 더 들락거리면서 나를 살펴본 후에는 ‘이계숙이가 남편을 잘 만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남편이 아내를 잘 만났네’란 말로 바뀝디다. 그렇게 인식이 바뀌게 된 이유를 설명하자면 내 자랑이 될 테지요.

며칠 전, 한 할배가 놀러왔어요. 마침 옥수수빵을 쪘길래 커피랑 같이 대접했지요. 빵을 먹어본 할배가 하는 말. 이 옥수수빵, 빵집에서 산 것보다 더 맛있네. 이렇게 맛있는 빵을 어떻게 만들었어? 가만보니 이 기자가 두루두루 못하는 게 없는 것 같네. 스카리는(Scott인데 스카리라는 애칭으로 통합니다) 아내를 너무 잘 만난 것 같아…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 남편은 나를 아주 잘 만났습니다.


이계숙

Related Posts

의견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