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심포니 115년 역사상 첫 여성 음악감독 탄생…홍콩 출신 엘림 챈 선임

2027년 9월부터 6년 임기 시작
“혁신과 전통 잇는 새 리더십 기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신임 음악감독으로 선임된 엘림 챈. 사진 =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 Photo by Cody Pickens.
샌프란시스코 심포니가 115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음악감독을 맞이한다. 샌프란시스코 심포니는 홍콩 출신 지휘자 엘림 챈을 차기 음악감독으로 선임했다고 21일 발표했다. 챈은 2027년 9월 시작되는 2027-28 시즌부터 6년 임기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며, 악단 역사상 13번째 음악감독이 된다.

이번 선임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1911년 창단 이후 세계적인 남성 지휘자들이 이끌어 온 이 악단에서 여성이 음악감독 자리에 오르는 것은 처음이다.

챈은 정식 임기 시작에 앞서 즉시 음악감독 지명자로 활동한다. 그는 오는 6월 5일과 6일 샌프란시스코 심포니를 지휘해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 베를리오즈의 ‘여름밤’, 드뷔시의 ‘바다’가 포함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메조소프라노 사샤 쿠크가 협연자로 무대에 오르며, 6월 5일 공연 뒤에는 관객들을 위한 환영 행사도 마련된다.

챈은 2027년 9월 정식 음악감독 임기를 시작하면 개막 갈라와 올 샌프란시스코 콘서트를 포함해 최소 10주간의 프로그램을 지휘한다. 2028-29 시즌부터는 정기 공연 10주 이상과 개막 주간 공연, 투어 및 사운드박스 등 특별 프로젝트를 위한 추가 3주 프로그램도 맡게 된다. 단순한 객원 지휘가 아니라 악단의 예술 방향과 장기 비전을 함께 설계하는 역할을 맡는 셈이다.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매슈 스파이비 최고경영자는 챈을 “특별한 재능과 리더십을 동시에 갖춘 음악가”라고 평가했다. 그는 챈이 오케스트라가 수없이 연주해 온 작품도 새롭게 들리게 만드는 해석력을 지녔다며, 악보의 구조와 색채, 감정의 흐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능력이 돋보인다고 설명했다. 또한 챈이 현대 작곡가들과도 적극적으로 호흡하며 새로운 음악을 단순히 프로그램에 포함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의 음악 문법 안에서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지휘자라고 강조했다.

챈 역시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는 세계적으로 위대한 오케스트라 가운데 하나”라며 “차기 음악감독으로 지휘대에 서게 돼 영광”이라고 밝혔다. 이어 단원들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음악성과 열린 태도, 그리고 악단이 가진 미래지향적 에너지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신임 음악감독으로 선임된 엘림 챈. 사진 =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특히 챈은 샌프란시스코라는 도시의 성격과 심포니의 방향성이 맞닿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베이 지역은 오랫동안 미래가 발명되는 곳이었다”며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역시 그런 실험적이고 진취적인 정신을 음악 안에 담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통적인 클래식 레퍼토리를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작품과 새로운 관객을 향해 나아가는 악단의 성격이 자신의 예술관과 맞닿아 있다는 의미다.

홍콩에서 태어난 챈은 미국 스미스 칼리지와 미시간대학교에서 공부했다. 2014년 도나텔라 플릭 지휘 콩쿠르에서 여성 최초 우승자가 되며 국제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보조 지휘자,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두다멜 펠로십 등을 거치며 경력을 쌓았다. 그는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앤트워프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지냈고, 2018년부터 2023년까지 로열 스코티시 내셔널 오케스트라 수석 객원지휘자로 활동했다.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의 인연은 2022-23 시즌 데뷔 무대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챈은 엘리자베스 오고넥의 신작 세계 초연이 포함된 프로그램을 지휘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브리튼, 홀스트, 차이콥스키 작품을 지휘한 공연에서도 호평을 받았고, 샌프란시스코 음악계에서는 챈이 악단과 빠르게 음악적 신뢰를 쌓았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악단 내부에서도 기대감이 크다. 수석 베이스 스콧 핑겔은 챈을 “창의성, 역동성, 개성을 지닌 특별한 음악가”라고 평가했다. 제2바이올린 부수석 제시 펠로스는 챈이 첫 리허설부터 독창적인 해석과 분명한 예술적 목소리를 보여줬다고 전했다. 수석 오보에 유진 이조토프도 챈의 지휘가 전통과 호기심, 인간적인 감수성을 함께 담고 있다며 새로운 협업에 대한 기대를 밝혔다.

이사회도 챈의 선임을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새로운 장으로 보고 있다. 이사회 의장 프리실라 기슬린은 샌프란시스코가 언제나 대담한 비전과 재창조의 정신으로 성장해 온 도시라며, 챈이 가진 에너지와 상상력, 개방성이 지금 이 시점의 심포니에 필요한 리더십이라고 밝혔다. 그는 챈의 예술적 비전과 악단의 연주력이 결합하면 샌프란시스코 심포니가 새로운 도약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샌프란시스코 심포니는 1911년 창단 이후 헨리 해들리, 앨프리드 허츠, 바질 캐머런, 이사이 도브로웬, 피에르 몽퇴, 엔리케 호르다, 요제프 크립스, 세이지 오자와, 에도 데 바르트,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 마이클 틸슨 토머스, 에사페카 살로넨 등 세계적인 음악감독들이 이끌어 왔다. 여기에 엘림 챈이 13번째 음악감독으로 이름을 올리게 되면서,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역대 음악감독 명단은 또 하나의 상징적인 변화를 맞게 됐다.

챈의 선임은 단순히 한 명의 지휘자가 새로 부임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샌프란시스코 심포니가 오랜 전통 위에서 젠더 다양성, 세대교체, 현대 음악에 대한 개방성, 그리고 도시의 혁신 정신을 함께 반영하는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15년 역사상 첫 여성 음악감독인 엘림 챈의 등장은 샌프란시스코 클래식 음악계는 물론 미국 주요 오케스트라 리더십의 변화 흐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최정현 기자 / choi@baynews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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