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4년까지 전체 가입자 750만 명 감소 전망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메디케이드 자격 제한 조치가 10월 1일부터 시행되면서 미국에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이민자 수십만 명이 정부 의료보험 혜택을 잃게 됐다고 AP가 10일 보도했다. 이번 조치로 난민과 망명자, 인신매매 및 가정폭력 피해자 등 인도적 보호를 받아온 이민자들까지 의료보험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의료서비스 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번 조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7월 서명한 대규모 감세 및 재정지출 개편법에 따른 것이다. 저소득층과 장애인 등을 지원하는 메디케이드의 연방정부 지원을 축소하고 가입 자격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합법적으로 미국에 입국해 일하고 세금을 납부하는 이민자들까지 의료보험을 잃게 되면서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새 규정에 따라 영주권이 없는 난민과 망명자, 인신매매 피해자, 가정폭력 피해자 등은 원칙적으로 연방정부가 지원하는 메디케이드 가입 자격을 상실한다. 반면 영주권자와 일부 쿠바·아이티 출신 이민자, 특정 태평양 도서국 출신 주민은 기존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일부 주에서는 합법 체류 아동과 임신부에 대한 예외도 인정된다.
의료정책 연구기관 KFF에 따르면 9개 주와 워싱턴DC에서 28만1천 명 이상의 합법 체류 이민자가 이번 조치로 메디케이드 혜택을 잃을 것으로 추산된다. 애리조나에서는 약 2만9천 명이 10월 1일 가입자 명단에서 제외됐으며, 플로리다에서는 약 17만7천 명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료보험 중단은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중증 환자들에게 특히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애리조나주 투손에 거주하는 마리아 차콘은 자동차 사고로 스스로 호흡할 수 없게 된 아들 헤수스를 약 5년 동안 돌보고 있다. 아들은 인공호흡기와 영양 공급관, 매일 복용해야 하는 약물에 의존하고 있으며 욕창을 예방하기 위해 두 시간마다 자세를 바꿔줘야 한다.
멕시코 출신인 차콘 가족은 2018년 인신매매 피해자에게 발급되는 특별비자를 통해 미국에 입국했다. 메디케이드는 그동안 아들의 치료와 간병에 매달 약 2만5천 달러를 지원해 왔다. 여기에는 부모가 장기 간병을 제공하는 데 대한 일부 보상도 포함됐다.
그러나 이번 자격 제한으로 의료보험 지원이 중단되면서 가족은 막대한 치료비를 감당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아들이 복용하는 약값만 매달 약 7천 달러에 달하며, 남아 있는 약도 10월 중순이면 소진될 예정이다.
차콘은 의료보험이 중단된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뒤 주정부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현재 영주권 취득 절차를 진행하고 있으나 영주권을 받더라도 일반적인 5년 대기 규정이 적용될 수 있다. 그는 아들의 건강 상태로는 멕시코로 돌아갈 수도 없다며 절박한 상황을 호소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조치가 납세자의 부담을 줄이고 공공복지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백악관의 로런 비스 대변인은 이민자들이 미국 납세자가 부담하는 공공복지 프로그램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이민자 권익단체들은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취약계층을 의료보험에서 배제하는 것은 사실상 이민자들을 미국 사회에서 밀어내는 정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전국이민법센터의 벤 다반조 선임 전략가는 이번 조치가 이민자들에게 미국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상당수 가입자는 병원에서 진료받으려 할 때 비로소 보험 자격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메디케이드 축소에 따른 영향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의회예산국은 지난해 분석에서 관련 법률의 개편으로 2034년까지 미국 전체 의료보험 가입자가 약 750만 명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KFF는 메디케이드 관련 연방정부 지출이 약 9,110억 달러 줄어들 것으로 분석했다.
다만 750만 명은 합법 체류 이민자만을 대상으로 한 수치가 아니라 메디케이드 개편 전반에 따른 보험 가입자 감소 전망이다. KFF가 인용한 의회예산국 추산에 따르면 메디케이드와 아동건강보험 가입 자격 제한만으로 추가로 무보험자가 되는 합법 체류 이민자는 2034년 기준 약 10만 명이다.
의료 전문가들은 저소득층의 보험 가입을 제한하면 단기적으로 정부 지출이 줄어들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응급실 이용과 중증질환 치료비가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보험이 없는 환자들이 경제적 부담 때문에 조기 진료를 포기하면서 예방하거나 간단히 치료할 수 있었던 질환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라틴계 민권단체 유니도스US의 카르멘 펠리시아노 정책·옹호 담당 부회장은 의료보험을 잃은 환자들이 결국 응급실을 찾게 되면 주정부의 의료비 부담이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역사회 의료지원 기관들도 이미 수용 능력에 한계가 있어 앞으로 의료보험을 잃게 될 모든 주민을 지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메디케이드 자격 제한은 시작에 불과하다. 2027년 1월부터는 합법 체류 이민자들의 건강보험거래소 보험료 보조금 자격도 추가로 제한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메디케이드에서 제외된 이민자들이 민간 건강보험으로 전환하는 것마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각 주는 연방정부의 새 기준에 따라 가입 자격을 재확인해야 한다. 다만 주정부 자체 예산으로 운영하는 의료지원 프로그램은 연방 메디케이드와 적용 기준이 다를 수 있어, 영향을 받는 주민들은 주정부의 자격 통지와 대체 의료지원 가능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책이 단순한 의료보험 예산 절감을 넘어 합법 체류 이민자들의 의료 접근성과 미국 전체 의료체계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