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숙 작가의 살아가는 이야기] 내가 나를 대접하지 않으면

사진은 친구 양선이의 혼자 먹는 브런치.
얼마전, 우연히 알게 된 중국인이 운영하는 바디 마사지업소에 단골이 되었습니다. 가격은 좀 센 편이지만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거든요. 잘 숙련된 마사지사의 손이 몸을 구석구석 만질 때는 구름 위에 누운 것같은 기분입니다. 꽁꽁 맺혀있던 관절의 마디마디가 풀리는 기분입니다. 이렇게 좋은 것을 혼자만 즐길 수 있나요. 내가 가장 존경하는 한 할배를 데리고 갔습니다. 평생 노동만 해서 골병이 단단히 든 할배. 최근들어 건강이 더 좋지 않아졌거든요. 어쩌면 마사지가 기력회복을 도울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마사지를 받고 나오면서 할배가 말합니다. 시원해서 좋기는 한데 너무 황송하다는 생각이 드네. 내가 이런 분에 넘치는 호사를 누려도 괜찮나하는. 그동안 열 명 넘는 지인들을 데리고 갔었지만 ‘황송’, ‘호사’란 표현을 쓴 사람은 그 할배가 유일했습니다. 자신한테는 새 옷 한 벌, 새 운동화 한 켤레를 안 사 입고 안 사 신으면서 한인사회와 불우한 이웃을 돕는 일에는 남보다 앞장서서 늘 큰 돈을 쾌척하는 할배 입에서 나온 황송과 호사라는 표현. 가슴이 찡했습니다. 사실은 나도 처음 마사지를 받으러 갔을 때 같은 마음이 들었더랬어요. 검불같이 미천한 내가 이런 호강을 해도 되나 하는 마음. 누구한테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냥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 하여튼 그랬습니다. 그런데 할배도 같은 마음이었나 봐요. 찡한 가슴을 누르며 나는 할배에게 짐짓 명랑하게 말했습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 우리도 호사를 누리면서 사십시다. 나 자신을 대접하며 사십시다.

나 역시 지금까지 할배랑 비슷하게 살았습니다. 남에게는 무지 후하면서 나한테는 인색하게 살았습니다. 나는 이날 이때껏 손톱 발톱 손질을 위해 전용업소를 다녀본 적이 없습니다. 혼자 집에서 그냥 대충 했지요. 얼굴 마사지도 한 번 다녀 본 적이 없습니다. 옷이나 구두나 핸드백이나 장신구도 50불 이상 넘는 것을 사 본 적이 없습니다. 화장품은 월마트나 코스코에서 산 십 몇불 짜리가 다였습니다.

몇 년전, 한국에 사는 친구 희주가 택배를 보내왔습니다. 송달료만 몇 십만원을 쓴 커다란 박스 안에는 새로 나왔다는 라면과 과자, 말린 대추, 볶은 깨소금, 직접 농사지었다는 고춧가루 등이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박스 안의 작은 박스에는 화장품이 들어있었고. 스킨, 로션, 영양크림, 그리고 아이크림. 한자로 멋드러지게 쓰여진 이름도, 보석함같은 화장품곽도, 도자기로 만들어진 용기도 예사롭지 않았어요. 장인의 작품처럼 무척 고급스러웠습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중년여성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라는 A사의 새로 나온 화장품. 가격이 엄청납니다. 영양크림 한 개에 50만원! 엄마야, 하고 나는 포장을 뜯으려던 손을 거두었습니다. 50만원이나 나가는 비싼 화장품을 도저히 쓸 용기가 안 나서였지요. 그 화장품들은 내가 좋아하는 지인 몇몇에게 건네졌습니다. 내게 쓰는 것은 손이 벌벌 떨릴 정도지만 남한테 주는 것은 전혀 아깝지 않았으니까.

욕하면서 닮는다고 하지요. 내가 우리 아버지를 많이 닮았어요. 우리 아버지. 근검절약, 자린고비란 말이 잘 어울리던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자신한테는 구두쇠도 그런 구두쇠가 없습니다. 그 추운 한국의 겨울, 독한 추위에 힘들어하면서도 연탄 한 장으로 버티던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남들한테는 후해요. 온 동네 거지들이 우리집으로 몰려듭니다. 어릴 때 우리집이 동네 초입에 위치해 있었어요. 마루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다 내다볼 수 있는. 아버지가 딱 봐서 행색이 초라한 사람들이 지나간다 싶으면 무조건 부릅니다. 밥 먹고 가라고. 밥 때가 아니면 미숫가루 탄 물이라도 한 잔 마시게 해서 보냅니다. 못사는 형제들과 친척들을 어떻게 해서든 자립하게 하려고 발 벗고 뛰고요. 그렇게 발 벗고 뛴 형제나 친척이 끝내 자립을 못한다 싶으면 자기의 뭉텅이 돈을 내 줍니다. 동네 처녀 총각 중매도 많이 서고요. 결혼이 성립된 처녀총각의 주례도 많이 섰습니다. 행려병자들이나 독거인들이 죽으면 동네 사람들이 제일 먼저 우리 아버지부터 찾습니다. 아버지가 나서서 장사를 쳐야 하니까. 동네 사람들끼리 분쟁이 나도 역시 우리 아버지.

아직도 이름까지 기억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용오네. 방 두 칸짜리 집에 우리 가족들이 오글오글 모여 살았는데 어느날 외출했던 아버지가 한 가족을 데리고 들이닥쳤습니다. 아버지 친구의 친구가족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사업을 하다 다 털어먹고 오갈 데가 없어진 가족. 친구를 찾아 우리 지역까지 흘러들어왔는데 그 친구가 난색을 표합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아이 둘에 부인은 만삭. 오갈 데가 없어진 가족. 그 가족의 딱한 사정을 들은 아버지가 형편이 풀릴 때까지 우리집에 머물라고 허락을 한 겁니다. 석 달동안 우리와 그 집이 식량과 반찬을 같이 먹었을 겁니다. 그렇쟎아도 쪼들리는 살림살이에 군식구가 하루 아침에 넷이나 늘어서 쌀과 김치를 감당할 수 없다고 엄마가 불평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자기 가족도 제대로 건사 못하면서 남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아버지가 어릴 때는 얼마나 원망스럽던지요. 얼마나 밉던지요. 얼마나 한심하던지요. 그런데 피는 못 속입니다. 그동안 내가 아버지가 하던 짓을 그대로 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남들한테 잘 하는 것도 잘 하는 거지만 일단은 나 자신한테도 잘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나를 대접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대접하겠습니까’란 글귀를 우연히 발견하고서입니다. 그 글을 읽는 순간 눈물이 막 쏟아지더군요. 그동안 나는 나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한 건가요.

한국에 사는 친구 영선이는 혼자 밥을 먹어도 레스토랑 음식같은 상차림입니다. 예쁜 찻잔과 접시에 단정하고 깨끗하게. 내 열혈 독자 한 사람도 매일매일의 식탁이 고급식당같습니다. 그녀의 ‘카카오 스토리’에 가 볼 때마다 감탄에 감탄을 거듭합니다. 감탄을 넘어 이제는 존경스럽고 경외스럽습니다. 한 두끼도 아니고 매 끼마다 비싼 와인에 꽃이 꽂힌 화병에 몇 개 레이드 된 접시에 색깔 맞춘 그릇에 반짝반짝 빛나는 와인잔을 세팅하는 열정과 성의에.

나는 혼자서는 그동안 단 한번도 제대로 차려놓고 밥을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라면 하나를 끓여도 남편을 위해서는 파도 넣고 고기도 잘게 썰어 넣고 계란도 한 개 깨넣고 최대한 맛을 내려고 노력하지만 혼자 먹을 때는 그냥 달랑 라면만. 파 한 줄기 넣는 것도 귀찮아서지요.

맞습니다. 내가 나를 대접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대접해 줍니까. 이제부터 나는 나를 대접하며 살 겁니다.

이계숙 작가

Related Posts

의견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