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계 최고 권위 그래미, ‘아시안 팝’ 신설…K-팝 새 전환점

2027년 시상식부터 K-팝·J-팝·C-팝 별도 경쟁
아시아 언어 기반 음악, 그래미 제도권 진입

그래미 트로피. 사진=그래미.
미국 대중음악계 최고 권위의 그래미 어워즈가 2027년 시상식부터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부문을 신설한다. K-팝을 비롯해 J-팝, C-팝 등 아시아 시장에서 탄생했거나 아시아권에서 폭넓게 인정받는 팝 음악을 별도 부문으로 평가하겠다는 결정이다. 그래미를 주관하는 레코딩 아카데미는 16일 2027년 제69회 그래미 어워즈부터 적용될 새 부문과 규정 변경을 발표했다.

이번 결정은 K-팝의 글로벌 위상이 단순한 팬덤 현상을 넘어 미국 음악 산업의 제도권 안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동안 K-팝 아티스트들은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베스트 뮤직비디오’,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등 기존 부문에서 경쟁해 왔다. 그러나 K-팝과 아시아 팝 음악만을 직접 대상으로 하는 그래미 부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레코딩 아카데미가 공개한 설명에 따르면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는 K-팝, J-팝, C-팝을 포함하되 이에 한정하지 않는다. 핵심 기준은 아시아 시장에서 기원했거나 널리 인정받는 팝 음악 퍼포먼스이며, 하나 이상의 아시아 언어가 의미 있게 사용된 작품이어야 한다. 수상자는 작곡가나 프로듀서가 아니라 해당 곡을 부른 퍼포밍 아티스트에게 주어진다.

이번 신설은 특히 K-팝 업계에 큰 호재로 받아들여진다. 방탄소년단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그래미 후보에 여러 차례 올랐지만 수상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래미 공식 기록상 방탄소년단은 ‘다이너마이트’, ‘버터’, ‘마이 유니버스’, ‘옛 투 컴’ 등으로 총 5차례 후보에 올랐다. 블랙핑크 로제 역시 브루노 마스와 함께한 ‘아파트’로 2026년 그래미에서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등 3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그럼에도 K-팝은 그동안 그래미 안에서 독자적 장르로 분류되기보다는 영어권 팝 음악과 같은 틀 안에서 경쟁해야 했다.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세븐틴, 스트레이 키즈, 뉴진스, 에스파,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등 글로벌 팬덤을 확보한 팀들이 빌보드 차트와 월드투어 시장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보여 왔지만, 그래미 수상으로 이어지는 장벽은 여전히 높았다. 새 부문은 이러한 구조를 일부 완화하고, 아시아 언어 기반 음악이 자체 문법과 시장성을 인정받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레코딩 아카데미는 이번 개편이 회원들의 제안을 바탕으로 한 연례 검토 과정의 결과라고 밝혔다. 하비 메이슨 주니어 레코딩 아카데미 최고경영자는 “2027년은 음악 산업 전반의 특별한 성장을 반영하는 놀라운 해가 될 것”이라며, 이번 변화가 오늘날 음악 산업의 폭과 다양한 장르, 창작자들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2027년 그래미 어워즈에는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외에도 ‘베스트 알앤비 컬래버레이션 또는 듀오/그룹 퍼포먼스’, ‘베스트 트래디셔널 팝 보컬 퍼포먼스’, ‘베스트 트래디셔널 포크 앨범’, ‘베스트 라틴 송’ 등 5개 부문이 새로 추가된다. 이에 따라 기존 알앤비와 포크 부문도 일부 명칭과 구조가 조정된다.

그래미는 신인상 규정도 함께 손질했다. 기존에는 아티스트가 ‘베스트 뉴 아티스트’ 부문에 최대 세 차례까지 제출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네 차례까지 가능해진다. 이는 스트리밍과 소셜미디어 시대에 아티스트가 대중적 인지도를 얻는 과정이 더 길고 복잡해졌다는 현실을 반영한 조치다. 다만 이전에 그래미 후보에 오른 적이 있는 아티스트는 여전히 신인상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번 발표는 K-팝 산업의 전략에도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그래미가 ‘아시아 언어의 의미 있는 사용’을 조건으로 명시한 만큼, 영어 싱글 중심의 글로벌 진출 전략뿐 아니라 한국어와 아시아 언어를 중심에 둔 음악도 더 적극적으로 제출될 수 있다. 그동안 미국 시장 진입을 위해 영어 가사를 확대해온 일부 K-팝 기획사들에는 새로운 선택지가 생긴 셈이다.

다만 새 부문 신설이 곧바로 K-팝의 그래미 수상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미는 여전히 레코딩 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로 후보와 수상작을 결정한다. 또 K-팝, J-팝, C-팝, 동남아시아 팝 음악까지 같은 부문에서 경쟁하게 될 경우 아시아 팝 내부의 경쟁도 치열해질 수 있다. 그럼에도 K-팝이 더 이상 ‘월드뮤직’이나 ‘비영어권 음악’의 주변부가 아니라, 그래미가 별도 이름을 붙여 평가하는 장르로 올라섰다는 점은 상징성이 크다.

제69회 그래미 어워즈는 2027년 2월 7일 열리며, ABC와 디즈니플러스, 훌루를 통해 생중계될 예정이다. K-팝이 새로 신설된 아시안 팝 부문에서 첫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떤 아티스트가 첫 후보 명단에 오를지가 내년 글로벌 음악계의 주요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스티브 권 기자 / steve.kwon@baynews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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