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영주권 신청자 10만 달러 보증금 검토…합법 이민 신청자들에 ‘걸림돌’ 될 듯

해외 영사관 신청자 일부 대상, 확정 땐 가족이민 직격탄
“자립 능력 입증” 명분…비판론 “부자만 가능한 이민”
관광비자 보증금 제도 확대한 새 합법이민 제한책

미 이민당국이 발행하는 비자와 영주권. 자료사진.
워싱턴발 이민 정책 변화가 또다시 합법 이민 신청자들에게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해외 미국 영사관을 통해 영주권을 신청하는 일부 이민비자 신청자에게 최대 10만 달러 규모의 보증금을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의 주요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국무부가 추진 중인 이 방안은 아직 확정된 최종 규정은 아니지만, 일부 국가를 대상으로 시범 시행하는 방식이 논의되고 있다.

이번 방안의 핵심은 영주권 신청자가 미국 입국 후 공공복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금전적 보증으로 입증하도록 하는 것이다. 국무부 대변인 토미 피곳은 “미국으로 이민하려는 사람은 재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민·국적법상 기존 권한을 활용해 특정 비자 신청자에게 보증금을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논의 중인 보증금은 10만 달러 안팎이지만, 실제 금액은 신청자의 개별 사정에 따라 더 낮거나 높게 책정될 수 있다. 신청자 본인뿐 아니라 미국 내 가족이 대신 보증금을 낼 수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 돈은 일반 수수료와 달리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돌려받는 ‘보증금’ 성격이다. 현재 논의된 방식은 영주권자가 훗날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뒤 반환받는 구조로, 시민권 취득까지 최소 5년 이상 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장기간 거액을 묶어두는 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해 온 합법 이민 제한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 행정부는 불법 이민 단속뿐 아니라 학생비자, 취업비자, 가족초청 이민, 영주권 심사 등 합법 이민 절차 전반에 대해 재정 능력과 공공부조 의존 가능성을 더 엄격하게 따지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고 있다. 특히 국무부는 지난 2월 “고위험 국가 출신 이민비자 신청자들이 미국 복지제도를 부당하게 이용하거나 공적 부담이 되는 일을 막기 위해 심사·검증 정책을 전면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10만 달러 보증금 방안은 이미 시행 중인 관광비자 보증금 제도를 영주권 영역으로 확대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국무부는 지난해 8월부터 일부 국가 출신 B-1/B-2 방문비자 신청자에게 5천 달러, 1만 달러, 1만5천 달러의 보증금을 요구할 수 있는 시범 프로그램을 시행해 왔다. 이 제도는 비자 초과체류율이 높거나 신원조회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국가, 또는 거주 요건 없는 투자 시민권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 출신 신청자를 대상으로 한다.

국무부가 공개한 관광비자 보증금 대상국 명단에는 말라위와 잠비아를 시작으로 나이지리아, 방글라데시, 네팔, 캄보디아, 몽골, 베네수엘라 등 50여 개국이 포함돼 있다. 현재 공개된 관광비자 보증금 명단에 한국은 포함돼 있지 않다. 다만 이번에 검토 중인 영주권 보증금 방안의 구체적 대상국과 적용 기준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기존 관광비자 보증금 제도에서는 보증금을 냈다고 해서 비자가 자동 발급되는 것은 아니다. 신청자는 영사관이 지시한 경우에만 미 재무부 결제 시스템인 페이닷고브를 통해 보증금을 내야 하며, 제3자 웹사이트를 통한 납부는 인정되지 않는다. 비자 소지자가 정해진 기간 안에 미국을 떠나거나, 비자를 받고도 미국에 입국하지 않거나, 입국심사에서 입국이 거부된 경우 보증금은 반환된다. 반대로 체류 기간을 넘기거나, 비자 신분을 바꾸려 하거나, 망명을 신청하는 경우 보증금 몰수 사유가 될 수 있다.

영주권 보증금의 법적 배경은 ‘공적 부담’ 심사와 맞닿아 있다. 연방 규정은 영주권 신분조정 신청자가 공공복지에 의존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입국·영주권 자격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 즉 입국·체류 자격이 없다고 판단되지만 다른 요건은 충족할 경우, 이민국이 공적 부담 보증금을 조건으로 신분조정을 승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영사관이 이민비자 발급 전 공적 부담 보증금을 요구하면 이민국이 이를 접수할 수 있으며, 보증금은 최소 1천 달러 이상으로 정하도록 규정돼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동시에 ‘공적 부담’ 규정도 다시 강화하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행정부는 식품지원, 메디케이드, 주거지원 등 공공 혜택 이용 이력이 있는 이민자의 영주권 신청을 거부할 수 있는 공적 부담 규정을 되살리고 있으며, 이 규정은 7월 20일 연방관보에 공식 게재된 뒤 9월 18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새 규정은 어떤 복지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불이익이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열거하기보다, 심사관이 신청자의 전체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국무부도 이미 공적 부담 심사에서 나이, 건강, 가족 상황, 재정 상태, 교육·기술 수준, 현재 또는 과거의 미국 공공혜택 사용 여부 등을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국무부는 공적 부담을 “생계 유지를 위해 정부에 주로 의존하는 사람”으로 설명하면서, 현금성 생계지원, 저소득층 가족 지원, 주·지방 일반부조, 정부 비용으로 이뤄지는 장기 시설보호 등을 예로 들었다.

이 제도가 실제 시행될 경우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분야는 가족초청 이민이다. 이민비자는 미국 시민권자의 배우자, 부모, 형제자매 등 가족 구성원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통로이며, 취업 기반 이민은 상당수 신청자가 이미 H-1B 등 임시 취업비자로 미국에 체류한 뒤 영주권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해외에서 영사관 절차를 밟는 가족초청 신청자에게 10만 달러 보증금이 적용될 경우, 미국 시민권자와 영주권자의 가족 재결합 자체가 경제력에 따라 갈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민 변호사 단체와 옹호단체들은 이번 방안을 사실상의 ‘부자 이민 제도’로 비판하고 있다. 미국이민변호사협회 정부관계 책임자인 샤르바리 달랄-데이니는 10만 달러 보증금이 “특정 유형의 이민자를 배제하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며, “우리 이민 시스템을 돈을 낼 수 있는 사람만 가족과 재회하거나 더 나은 삶을 찾을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행정부는 이 조치가 복지 재정 보호와 이민 제도 신뢰 회복을 위한 장치라는 입장이다. 국무부는 이민자가 미국 사회에 들어온 뒤 “가져가는 것보다 더 많이 기여해야 한다”는 취지로 설명하고 있으며, 건강 문제나 생계 문제로 미국 공공혜택에 의존할 가능성이 큰 신청자를 사전에 걸러내겠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한인사회에도 파장은 적지 않을 수 있다. 현재까지 한국 출신 신청자에게 이 방안이 적용된다는 공식 발표는 없지만, 미국 시민권자가 한국에 있는 배우자나 부모를 초청하는 경우, 또는 한국 거주 가족이 미국 영사관을 통해 이민비자를 진행하는 경우 대상 범위에 포함될지 여부가 중요한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특히 10만 달러가 실제 현금성 보증금으로 요구된다면 중산층 가정도 장기간 큰 재정 부담을 감수해야 하며, 신청 시점 자체를 미루는 사례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다만 현재 단계에서 이 방안은 확정된 정책이 아니라 국무부 내부 검토 및 시범 시행 논의 단계다. 대상 국가, 보증금 산정 기준, 반환 조건, 기존 신청자에게의 소급 적용 여부, 가족이 대신 낸 보증금의 법적 처리 방식 등 핵심 세부사항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민 전문가들은 실제 규정이나 지침이 발표되기 전까지는 개별 신청자가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기보다 자신의 비자 유형, 신청 장소, 재정 보증 서류, 공공혜택 이용 이력 등을 변호사와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이번 10만 달러 영주권 보증금 검토는 단순한 행정 수수료 인상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합법 이민의 문턱을 ‘자격 심사’에서 ‘재정 능력 심사’로 더 강하게 옮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조치다. 실제 시행될 경우 미국 이민 제도는 가족관계나 고용 필요성뿐 아니라 신청자와 후원 가족이 거액을 장기간 묶어둘 수 있는지를 따지는 구조로 바뀔 수 있다. 이민자 사회에서는 이번 방안이 최종 규정으로 이어질지, 그리고 법적 도전에 직면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스티브 권 기자 / steve.kwon@baynews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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