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세입자 ‘바이아웃’ 급증…AI 붐에 10만 달러 넘는 합의도

렌트컨트롤·시장 임대료 격차 커지며 협상 늘어
선셋·리치먼드 등 고급 주택지역으로 확산

샌프란시스코 주택 지역. 자료사진.
샌프란시스코에서 집주인이 렌트컨트롤 적용을 받는 세입자에게 거액을 지급하고 자발적으로 퇴거시키는 이른바 ‘바이아웃’이 다시 크게 늘고 있다. 특히 과거 미션 등 상대적으로 서민층이 많은 지역에 집중됐던 바이아웃이 최근에는 선셋과 리치먼드, 퍼시픽하이츠, 마리나 등 주택가격과 임대료가 높은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어 샌프란시스코 주택시장의 새로운 변화로 주목받고 있다.

바이아웃은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임대주택을 비워달라고 요청하는 방식이다. 특히 렌트컨트롤이 적용되는 오래된 주택에서는 장기 세입자가 시세보다 훨씬 낮은 임대료를 내고 있는 경우가 많아 집주인 입장에서는 수만 달러를 지급하더라도 세입자를 내보낸 뒤 새로운 세입자에게 시세대로 임대하거나 빈 건물 상태로 매각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 시 조례 역시 임대료 통제 주택과 시장 임대료의 격차가 커질수록 집주인이 세입자를 퇴거시키려는 경제적 유인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바이아웃 규정의 배경으로 명시하고 있다.

올해 들어 이러한 움직임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까지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이 시에 신고된 렌트보드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6년 들어 이미 수백 명의 세입자가 바이아웃 제안을 받았거나 합의했으며, 새로운 바이아웃 협상 건수도 팬데믹 이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증가세가 두드러지는 곳은 샌프란시스코 서부 지역이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선셋과 파크사이드 지역에서 집주인이 시작한 바이아웃 협상은 약 50건으로 집계됐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 같은 기간 약 30건과 비교하면 약 67% 늘어난 규모다. 리치먼드와 퍼시픽하이츠, 마리나에서도 세입자를 상대로 한 바이아웃 협상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난해에도 바이아웃은 이미 상당한 규모였다. 샌프란시스코 렌트보드가 시 수퍼바이저위원회에 제출한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동안 집주인이 바이아웃 협상을 시작하기 위해 제출한 신고는 모두 601건이었으며, 실제 바이아웃 합의서가 렌트보드에 접수된 사례는 353건이었다. 지역별로는 선셋에서 59건의 협상 신고와 36건의 합의가 접수됐으며, 미션 58건·29건, 잉글사이드 48건·28건, 텐더로인 47건·26건, 하이트애시베리 43건·32건 등이었다.

올해 바이아웃 금액도 크게 올라가고 있다. 렌트보드 자료를 기준으로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체결된 바이아웃의 중간값은 약 5만 달러였다. 이 가운데 약 20건은 합의금이 10만 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분석됐다. 세입자의 거주 기간이나 현재 임대료와 시장가격 차이, 가족 구성, 퇴거 가능성, 건물 매각 계획 등에 따라 합의 금액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리치먼드 지역에서는 15년 넘게 같은 2베드룸 주택에 거주해온 한 세입자가 결국 12만 달러를 받고 집을 비운 사례도 나왔다. 이 세입자는 렌트컨트롤을 적용받아 월 약 2,800달러를 내고 있었지만 당시 샌프란시스코의 2베드룸 시장 임대료는 이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었다. 집주인의 첫 제안은 2,500달러에 불과했지만 여러 차례 협상이 이어지며 최종적으로 12만 달러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이 세입자와 동거인은 샌프란시스코의 높은 시장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결국 이스트베이로 이주했다.

이처럼 집주인이 거액을 지급하면서까지 세입자를 내보내려는 가장 큰 이유는 렌트컨트롤 주택과 현재 시장 임대료 사이의 격차다. 공실이 발생하면 집주인은 기존 세입자가 내던 낮은 임대료가 아니라 시장 수준에서 새로운 임대료를 책정할 수 있다. 건물을 매각하는 경우에도 장기 세입자가 거주하는 렌트컨트롤 주택보다 비어 있는 주택이 훨씬 높은 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샌프란시스코의 AI 산업 호황도 바이아웃 증가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AI 기업을 중심으로 고소득 근로자와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퍼시픽하이츠와 마리나, 리치먼드, 선셋 등 인기 주거지역의 고급 임대주택과 매매주택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시장 임대료가 빠르게 상승하자 집주인이 기존 렌트컨트롤 세입자에게 수만 달러를 지급하더라도 새로운 세입자에게 높은 임대료를 받으면 비교적 빠른 기간 안에 바이아웃 비용을 회수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반면 세입자 입장에서는 5만 달러 또는 10만 달러가 넘는 돈을 한꺼번에 받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손해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월 2,500~3,000달러 수준의 렌트컨트롤 주택에 살던 세입자가 퇴거한 뒤 월 4,000~5,000달러 이상의 시장 임대료를 부담해야 한다면 수만 달러의 바이아웃 금액도 몇 년 안에 소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는 이러한 바이아웃 과정에서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한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다. 집주인은 바이아웃 협상을 시작하기 전 세입자에게 렌트보드가 승인한 권리 안내서를 제공하고 렌트보드에 관련 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세입자는 바이아웃 협상을 거부할 권리가 있으며 변호사나 세입자 권익단체와 상담할 수도 있다. 합의서에 서명한 뒤에도 모든 당사자가 서명한 날로부터 45일 이내에는 세입자가 합의를 취소할 수 있다.

또한 바이아웃 합의는 서면으로 이뤄져야 하고 집주인은 세입자의 45일 취소기간이 지난 뒤 정해진 기간 안에 합의서를 렌트보드에 제출해야 한다. 시는 이를 통해 바이아웃이 사실상 강제퇴거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고 세입자들이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은 상태에서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세입자 권익 관계자들은 특히 집주인이 “본인이나 가족이 직접 거주할 예정”이라며 세입자에게 퇴거 가능성을 압박한 뒤 실제로는 건물을 매각하거나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사례에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반면 집주인 측에서는 법원을 통한 퇴거 절차가 장기간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바이아웃은 양측이 조건과 금액을 협상해 자발적으로 계약 관계를 종료할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이라는 입장이다.

최근 샌프란시스코의 바이아웃 급증은 단순히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의 개별적인 퇴거 협상을 넘어 AI 붐으로 다시 달아오르고 있는 주택시장과 렌트컨트롤 주택의 가치 상승이 맞물려 나타나는 현상으로 분석된다. 특히 바이아웃이 과거 미션과 같은 지역에서 선셋·리치먼드·퍼시픽하이츠 등 고가 주택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은 샌프란시스코의 새로운 주거비 상승 압력이 어느 지역에 집중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고 있다.


스티브 권 기자 / steve.kwon@baynews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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