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말희 시인의 ‘삶에 시향’] 설중 雪中 바람의 노래

설중 雪中 바람의 노래

– 강말희

누군가 발자국도 없이 걷는다
빈 가지 삐걱대는 나목 사이로
허연 숨소리 턱에 걸리고
곱게 빻아 머리에 인 떡가루 날리 듯
냉기를 분말로 휘 젖는다

겨울에 진실이 각질 되어
별빛과 초승달에 걸린 허공에
순백의 입자를 표피로 날리고
흰 새 떼처럼 위로 날아오르느라
투명한 바람은 휘파람 소리를 낸다

가난보다 더 오지게 춥던
소싯적 섣달 밤길은 긴 터널 같았고
가로등 그림자 폐병앓이처럼 핼쑥하며
하얗게 연소한 정열은 연탄재처럼 부서져
바람에 그 재를 눈처럼 날린다

서슬 퍼렇던 바다색 포장지는 구겨져
긴장한 파도처럼 베란다를 출렁이고
한때 동경하던 설원이 또 그리워
며칠을 폭설로 방안에 갇힌 날은
자유를 품은 바람에 매서운 날개를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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