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 시인의 ‘문학서재’] 사라지는 것들의 약속

사라지는 것들의 약속
– 홍인숙


이 가을, 또 얼마나 짙은 가슴앓이를 할 것인가. 여름이 한창일 때 벌써 가을이 다가옴을 두려워했습니다. 팔랑이는 잎새 사이로 스치는 햇살에도 눈물이 차오르는 내 연약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밤잠 설치고 나선 거리엔 우수수 발길에 차이는 낙엽소리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어느새 가을 속에 성큼 빠져든 나를 보았습니다.

꽃이 피었다 지는 것과 피지 않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사람이 태어났다 가는 것과 태어나지 않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내가 태어나 철부지 소녀가 되고,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며 마른 대지 위로 이룬 한 생애 흔적을 그 누가 기억할까요. 그러나 어쩌지요. 지금 난 이렇게 한 시대를 공존하는 사람들과 어깨를 마주하고 세상 한 가운데 서 있는 것을. 가족이라, 친구라 이름 지어진 관계 속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남은 삶의 여백을 채우고 있는 것을.

왜 꽃이 피고 지는가. 왜 사람이 나고 죽는가 묻지는 않겠습니다. 날마다 조금씩 여려지는 햇살 사이로 스쳐 지나는 바람과, 소리 없이 낙화하는 꽃잎들을 바라보며, 침묵 속에 사라지는 것일지라도 곧 다시 태어남의 약속임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는 계절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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