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선이 지휘하는 슈트라우스의 심리극,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엘렉트라’ 무대 오른다

6월 7일부터 27일까지 워 메모리얼 오페라 하우스 공연
100명 넘는 오케스트라·현대적 무대 해석 ‘비극의 긴장감 극대화’

김은선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음악감독. 사진 =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샌프란시스코 오페라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강렬한 걸작 ‘엘렉트라’를 오는 6월 7일부터 27일까지 워 메모리얼 오페라 하우스 무대에 올린다. 이번 공연은 김은선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음악감독이 지휘를 맡아, 슈트라우스 음악의 폭발적 에너지와 고대 그리스 비극의 어두운 심리극을 대규모 오케스트라 사운드로 펼쳐 보인다.

‘엘렉트라’는 슈트라우스가 1909년 발표한 단막 오페라로, 그리스 비극을 20세기 초 음악극의 언어로 다시 써낸 작품이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바탕으로 하지만, 작품의 중심은 단순한 복수 서사가 아니다. 아버지 아가멤논의 죽음 이후 복수에 사로잡힌 엘렉트라의 내면, 어머니 클리템네스트라와의 갈등, 가문을 휩쓴 폭력의 기억이 무대 위에서 압축적으로 폭발한다.

이 작품은 슈트라우스와 극작가 후고 폰 호프만슈탈의 첫 협업작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이후 ‘장미의 기사’, ‘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 ‘그림자 없는 여인’, ‘아라벨라’ 등 20세기 오페라사의 주요 작품들을 함께 만들어냈다. 그 출발점에 놓인 ‘엘렉트라’는 두 예술가의 미학이 가장 날카롭고 과감하게 충돌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엘렉트라’는 오케스트라가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처럼 기능하는 오페라다. 약 1시간 45분 동안 이어지는 비교적 짧은 공연 시간이지만, 슈트라우스는 100개가 넘는 악기를 동원해 밀도 높은 화성과 거대한 리듬, 극단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무대 위 인물들의 분노와 공포, 기억과 집착은 노래뿐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거친 숨결을 통해 관객에게 직접 전달된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의 슈트라우스 '엘렉트라' 한 장면. 사진 =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이 점에서 이번 공연은 김은선 음악감독의 존재감이 특히 주목된다. 김은선은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음악감독으로서 대편성 레퍼토리에서 섬세함과 힘을 동시에 끌어내는 지휘자로 평가받아 왔다. 지난해 바그너 ‘파르지팔’ 새 프로덕션을 통해 오케스트라의 장대한 에너지와 내밀한 표현을 함께 이끌어냈다는 호평을 받은 데 이어, 이번에는 슈트라우스의 가장 치열한 작품 중 하나인 ‘엘렉트라’에 도전한다.

김은선에게 올해는 이른바 ‘슈트라우스의 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엘렉트라’를 처음 지휘하기에 앞서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를 지휘했고, 베를린 슈타츠오퍼 운터 덴 린덴에서는 ‘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를 이끌었다. 2026~2027 시즌에도 베르디 ‘시몬 보카네그라’, 마스네 ‘마농’, 바그너 ‘라인의 황금’을 지휘하며, 11월에는 슈트라우스 작품만으로 구성된 특별 연주회도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엘렉트라’의 무대 해석 역시 작품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확장한다. 키스 워너의 프로덕션은 고대 왕궁 대신 현대의 박물관을 배경으로 삼는다. 한 젊은 여성이 우연히 밤새 박물관 안에 갇히고, 고대 그리스와 아트레우스 가문의 전시물들 사이에서 자신의 과거 트라우마와 마주하게 되는 설정이다. 고대 신화 속 폭력의 기억은 현대인의 심리적 상처와 겹쳐지며, 작품은 단순한 고전 비극을 넘어 오늘의 관객이 체감할 수 있는 심리 드라마로 다시 태어난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의 슈트라우스 '엘렉트라' 한 장면. 사진 =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이 프로덕션은 201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소개됐을 당시 베이 지역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고대 비극을 현대적 공간 속에 배치한 해석, 세밀한 무대 장치, 영상과 조명을 활용한 심리적 분위기 조성은 작품을 한 번의 관람으로 쉽게 소화하기 어려운 밀도 높은 공연으로 만들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안야 퀸홀트가 연출을 맡고, 무대·의상·조명·영상 디자인이 결합해 박물관이라는 공간 안에 감춰진 기억과 폭력의 이미지를 무대 위에 구현한다.

출연진도 국제적 무대에서 활약해 온 성악가들로 구성됐다. 주역 엘렉트라 역은 러시아 소프라노 엘레나 판크라토바가 맡아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에 데뷔한다. 판크라토바는 빈, 암스테르담, 드레스덴, 리옹, 나폴리 등 주요 오페라 무대에서 엘렉트라를 노래해 온 성악가로, 강한 성량과 치밀한 표현력이 요구되는 이 배역을 여러 차례 소화한 경험을 갖고 있다.

엘렉트라의 여동생 크리소테미스 역은 엘자 판 덴 헤버가 맡는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의 아들러 펠로우와 메롤라 오페라 프로그램을 거쳤고, 샌프란시스코 음악원 출신이기도 하다. 샌프란시스코와 깊은 인연을 가진 성악가로, 앞서 모차르트 ‘이도메네오’와 베토벤 ‘피델리오’에서도 김은선 음악감독과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의 슈트라우스 '엘렉트라' 한 장면. 사진 =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엘렉트라의 어머니 클리템네스트라 역에는 미카엘라 슈스터가 출연한다. 슈스터는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100주년 시즌 당시 풀랑크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에서 강렬한 무대를 선보인 바 있다. 엘렉트라의 남동생이자 복수의 실행자인 오레스트 역은 베이스바리톤 카일 케텔슨이, 클리템네스트라의 연인이자 공범인 아이기스트 역은 오랜 기간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무대에 서 온 윌리엄 버든이 맡는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와 ‘엘렉트라’의 인연도 깊다. 이 작품은 1938년 처음 소개된 이후 지금까지 10차례 시즌에서 공연됐다. 당시 슈트라우스가 요구한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수용하기 위해 워 메모리얼 오페라 하우스의 오케스트라 피트가 확장됐고, 그 공간은 잠수함 내부를 닮았다는 이유로 ‘토피도 룸’으로 불리게 됐다. 이 공간은 지금도 대편성 오페라 공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는 이번 공연 가운데 6월 14일 오후 2시 공연을 온라인으로도 생중계한다. 온라인 관람권은 25달러이며, 6월 15일 오전 10시부터 48시간 동안 다시 보기가 가능하다. 같은 날 공연 후에는 김은선 음악감독이 관객과의 대화에 나서 작품과 음악, 무대 뒤 준비 과정에 대해 직접 설명할 예정이다.

‘엘렉트라’는 복수와 광기, 가족의 붕괴를 다룬 비극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상처와 기억이 어떻게 세대를 넘어 반복되는지에 대한 질문이 담겨 있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의 이번 무대는 그 질문을 현대적 시각으로 다시 꺼내 들고, 김은선의 지휘 아래 슈트라우스 음악의 거대한 힘을 통해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음악감독 김은선. 사진 =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 Photo by Cody Pickens.


최정현 기자 / choi@baynews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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