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81주년 광복절 경축식을 마친 뒤 열린 광복절 경축식 준비위원회의 상황설명회는 우리 북가주 한인 공동체가 직면한 깊은 구조적 난제를 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한인 사회 내부의 의견 대립과 의전 갈등이 당사자 간 대화로 해결되지 못하고, 한국의 정부 기관 및 관련 단체에 투서(投書) 형태로 전달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는 미주 한인사회의 자율적 논의 구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씁쓸한 단면입니다.
독일의 사회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는 그의 핵심 이론인 ‘공론장(Public Sphere) 이론’과 ‘소통행위론(Theory of Communicative Action)’을 통해, 민주적 공동체가 건전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성적 대화와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한 ‘공론장’이 필수적이라고 역설했습니다. 하버마스가 말하는 이상적인 공론장은 모든 구성원이 평등한 위치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합리적인 논증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현재 한인사회의 모습은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이성적 토론보다 개인의 지위, 영향력, 후원 액수나 기득권에 의존하는 권위주의적 태도가 우선시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의전이나 발언 시간, 행사 일정과 같은 대부분 지역한인에게는 사소한 사안조차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 공론장에서 조정되지 못하고 갈등으로 비화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자율적 공론장이 제 기능을 상실했음을 의미합니다.
하버마스는 시민사회의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영역을 ‘생활세계(Lifeworld)’라 부르고, 이를 관료제나 금권과 같은 ‘시스템(System)’과 구분했습니다. 한인사회 내부의 갈등을 자체적인 대화와 타협으로 풀지 못하고 한국 정부기관이나 외부 권력기관에 민원과 투서로 해결하려는 행위는, 생활세계의 자율성을 스스로 포기하고 관료적 시스템의 개입을 초래하는 전형적인 ‘생활세계의 식민화’ 현상입니다. 외부 기관의 확인과 소명이 반복될수록 지역 한인회의 자율적 입지는 위축되고, 한인 사회 전체의 신뢰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사에서 언급된 한국 정부기관이나 외부 권력기관을 향한 ‘투서’ 행위는 단순한 개인적 불만 표출을 넘어, 한인사회의 건전한 자율적 논의 구조를 뿌리부터 흔드는 심각한 구조적 폐해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인사회가 내부의 갈등과 이견을 대화와 타협으로 풀지 못하고, 외부의 행정·보훈·외교 기관에 투서하는 행위는 동포 사회에 만연한 한국 정부의 개입에 의존하는 동포 사회의 “생활세계의 자율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입니다. 동포 사회의 분쟁에 한국 정부 기관이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그럴 권한도 한국 정부 기관에 있지는 않습니다.
하버마스는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려는 ‘의사소통적 행위’와 자신의 이익이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타인을 도구로 삼는 ‘전략적 행위’를 구분합니다. 한인 사회 내 익명 또는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투서 문화는 합리적 토론을 거부하는 극단적 전략적 행위입니다. 한국 정부 기관에의 투서가 교포 한인 사회 내부의 문제를 조정할 수 있는 생산적 행위가 될 수 없고 오히려 비방의 대상이 된 교포 단체에 대한 본국 정부의 지원에 부정적 영향만 끼칠 것을 고려해 볼 때 이런 음해성 투서 행위는 개인적 감정 해소에는 효율적일지 몰라도 전 교포 사회의 관점에서는 제 살 깎아먹기 식 자해성 행동일 뿐입니다. 북가주 한인 사회의 바람직한 미래를 고민한다면 교포 언론을 통해 열린 공론장에서 당사자가 나와 사실 근거를 제시하고 반론권을 보장받는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투서는 건강한 비판과 대화를 차단하고, 흑색선전과 분열을 야기하며, 공론장을 왜곡된 모함과 불신의 장으로 전락시킵니다.
하버마스는 합리적인 사회일수록 타인의 인격을 존중하고 논리적 설득을 통해 합의를 이루려는 ‘소통적 이성’이 작동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자신의 이익이나 목적 달성을 위해 타인을 수단으로 삼아 제압하려는 태도를 ‘도구적 이성’이라 불렀습니다.
투서는 공개적인 공론장에서 정당한 논증을 거쳐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행위가 아닙니다. 이는 음성적인 방식과 외부 권력의 힘을 빌려 상대방에게 소명의 기회를 박탈한 채 그 대상에게 불이익을 주려는 “도구적 이성”의 전형적 행동입니다. 교포 사회에 미칠 부수적 피해에 대한 고려도 없는 상대를 음해하려는 투서 정치는 구성원 간의 최소한의 인격적 신뢰마저 붕괴시킵니다. 결국 투서 행위가 반복될수록 동포 사회 내부의 자율적 문제 해결 능력은 저하되고, 외부에 ‘분열되고 성숙하지 못한 공동체’라는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게 됩니다.
한인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무분별한 투서(음해성 고발) 문화’와 함께,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과도한 의전 관행’은 공동체의 발전과 소통을 저해하는 대표적인 요인입니다.
광복절과 같은 기념행사는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전유물이 아니라 한인 공동체 전체가 역사적 기억을 공유하고 화합하는 자리여야 합니다. 한인단체 행사나 모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나친 의전 경쟁(축사 순서, 내빈 소개, 직함 따지기 등)은 공론장의 근본 전제인 ‘구성원 간의 평등성’을 훼손합니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공론장은 참여자의 신분이나 권력이 아니라 ‘더 나은 인식이 갖는 강제력(the unforced force of the better argument)’에 의해 운영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의전 과잉은 참여자 간의 위계를 형성하고, 정작 논의되어야 할 공동체의 주요 의제보다 ‘누가 더 대우받는가’라는 권력의 서열화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이는 리더십이 공공의 봉사가 아닌 권위주의적 지위로 왜곡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번 행사는 단순한 한 단체의 기념식적 행사가 아니라 광복절이라는 명목으로 주류 사회 정치인 및 외교 사절들을 초청한 민간외교적 성격이 더욱 강한, 청소년들을 포함한 많은 한인 단체들이 참여한 전 교포 적 축제 같은 느낌의 행사였습니다. 행사의 성격을 규정하는 식순, 자리 배치 및 프로그램의 구성은 모든 단체가 참여한 준비위원회에서 토의를 거쳐 합의하여 결정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준비위원회는 많은 외국인이 참석하고 어린 청소년들이 참여한 이번 행사에서 단순히 의례적 기념식적 요소보다는 K-Culture 홍보성 프로그램이 광복 80여년이 지난 이 시점에는 적절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습니다. 외국 손님에게도 지루할 수도 있는 의전 과정을 최소한 줄이고 기성세대의 구태의연한 행사 방식이 즐겁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 맞는 새로운 형식의 광복절 행사가 충분히 논의될 수 있는 참신한 시도였다고 생각됩니다. 편협한 의전에의 과잉 집착을 버리고 이런 논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만일 그 결과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합의된 결론에 승복하고 자신의 위치에서 어떻게 도움이 될 것을 고민하는 것이 성숙한 태도였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면, 행사 참여자는 특정 단체장이 지도·훈육해야 하는 피동적 대상이 아닙니다.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현지 정치인, 외국 외교사절, 그리고 행사를 위해 서너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교포 청소년에게 긴 시간의 한국어 축사는 아무런 의미없는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정작 축사를 요구했던 단체장은 자신의 행사를 위해 축사 시간 이후 참여자들이 오랜 시간 준비한 공연도 보지 않고 바 행사장을 떠났습니다. 시간 제한 없는 축사 요구는 그것이 자신의 단체장으로서의 권리라 생각하는 것과 다름 아니고 참여자가 강제로 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곳 북가주 교포들은 선생님의 강의를 들어야 하는 미숙한 학생이 아니라, 널리 자랑할 만한 행사를 조직하고 치러낸 역량과 그 행사의 의미를 스스로 해석할 지적 능력을 충분히 갖춘 능동적 주체입니다. 그분들은 흔한 교포 사회 행사에서 의전적 대우를 요구할 직책을 가지고 계시지는 않지만, 행사에서 소개된 소위 귀빈들보다 더 많은 땀과 시간을 쏟으셨습니다.
한인사회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버마스가 말한 ‘이상적 발화 상황(Ideal Speech Situation)’을 회복해야 합니다. 건강한 이의 제기와 비판은 언제든 환영받아야 하지만, 이는 투서가 아닌 공식적인 회의체와 공개 토론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근거 없는 음해성 투서에 휘둘리지 않는 자정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투서라는 그늘과 의전이라는 껍데기를 벗어던질 때, 한인사회는 비로소 모두가 평등하게 참여하고 합리적으로 소통하는 성숙한 공론장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언론의 보도기사에서 지적된 축사 순서, 발언 시간, 자리 배치 등 과도한 의전(Protocol)을 둘러싼 갈등은 한인 사회와 같은 시민 공동체가 해결해야 할 대표적인 권위주의적 폐해입니다. 광복절 경축식이나 커뮤니티 행사의 본질은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동포사회의 화합과 발전을 도모하며 다음 세대에 정체성을 전수하는 데 있습니다. 의전은 이러한 본래 목적을 다듬고 보조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전과 형식, 발언의 순서나 길이에 집착해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공동체의 대의보다 개인의 상징적 권위나 대우를 우선시함으로써, 행사의 본래 취지를 퇴색시키고 일반 구성원들에게 깊은 실망감과 피로감을 안겨줍니다.
한인사회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투서라는 그늘과 의전이라는 껍데기를 벗어 던지고 모두가 평등하게 참여하고 합리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으로 거듭날 때 우리 북가주 한인 사회는 더욱 성숙한 민주적 사회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각 한인 단체 사이의 지역적 정서적 거리를 극복하고 적극적 참여와 자기희생적 협동으로 마무리한 지난 광복절 행사에서 보여준 단합을 앞으로도 기대해 봅니다.
김지수 변호사
독일의 사회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는 그의 핵심 이론인 ‘공론장(Public Sphere) 이론’과 ‘소통행위론(Theory of Communicative Action)’을 통해, 민주적 공동체가 건전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성적 대화와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한 ‘공론장’이 필수적이라고 역설했습니다. 하버마스가 말하는 이상적인 공론장은 모든 구성원이 평등한 위치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합리적인 논증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현재 한인사회의 모습은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이성적 토론보다 개인의 지위, 영향력, 후원 액수나 기득권에 의존하는 권위주의적 태도가 우선시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의전이나 발언 시간, 행사 일정과 같은 대부분 지역한인에게는 사소한 사안조차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 공론장에서 조정되지 못하고 갈등으로 비화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자율적 공론장이 제 기능을 상실했음을 의미합니다.
하버마스는 시민사회의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영역을 ‘생활세계(Lifeworld)’라 부르고, 이를 관료제나 금권과 같은 ‘시스템(System)’과 구분했습니다. 한인사회 내부의 갈등을 자체적인 대화와 타협으로 풀지 못하고 한국 정부기관이나 외부 권력기관에 민원과 투서로 해결하려는 행위는, 생활세계의 자율성을 스스로 포기하고 관료적 시스템의 개입을 초래하는 전형적인 ‘생활세계의 식민화’ 현상입니다. 외부 기관의 확인과 소명이 반복될수록 지역 한인회의 자율적 입지는 위축되고, 한인 사회 전체의 신뢰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사에서 언급된 한국 정부기관이나 외부 권력기관을 향한 ‘투서’ 행위는 단순한 개인적 불만 표출을 넘어, 한인사회의 건전한 자율적 논의 구조를 뿌리부터 흔드는 심각한 구조적 폐해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인사회가 내부의 갈등과 이견을 대화와 타협으로 풀지 못하고, 외부의 행정·보훈·외교 기관에 투서하는 행위는 동포 사회에 만연한 한국 정부의 개입에 의존하는 동포 사회의 “생활세계의 자율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입니다. 동포 사회의 분쟁에 한국 정부 기관이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그럴 권한도 한국 정부 기관에 있지는 않습니다.
하버마스는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려는 ‘의사소통적 행위’와 자신의 이익이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타인을 도구로 삼는 ‘전략적 행위’를 구분합니다. 한인 사회 내 익명 또는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투서 문화는 합리적 토론을 거부하는 극단적 전략적 행위입니다. 한국 정부 기관에의 투서가 교포 한인 사회 내부의 문제를 조정할 수 있는 생산적 행위가 될 수 없고 오히려 비방의 대상이 된 교포 단체에 대한 본국 정부의 지원에 부정적 영향만 끼칠 것을 고려해 볼 때 이런 음해성 투서 행위는 개인적 감정 해소에는 효율적일지 몰라도 전 교포 사회의 관점에서는 제 살 깎아먹기 식 자해성 행동일 뿐입니다. 북가주 한인 사회의 바람직한 미래를 고민한다면 교포 언론을 통해 열린 공론장에서 당사자가 나와 사실 근거를 제시하고 반론권을 보장받는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투서는 건강한 비판과 대화를 차단하고, 흑색선전과 분열을 야기하며, 공론장을 왜곡된 모함과 불신의 장으로 전락시킵니다.
하버마스는 합리적인 사회일수록 타인의 인격을 존중하고 논리적 설득을 통해 합의를 이루려는 ‘소통적 이성’이 작동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자신의 이익이나 목적 달성을 위해 타인을 수단으로 삼아 제압하려는 태도를 ‘도구적 이성’이라 불렀습니다.
투서는 공개적인 공론장에서 정당한 논증을 거쳐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행위가 아닙니다. 이는 음성적인 방식과 외부 권력의 힘을 빌려 상대방에게 소명의 기회를 박탈한 채 그 대상에게 불이익을 주려는 “도구적 이성”의 전형적 행동입니다. 교포 사회에 미칠 부수적 피해에 대한 고려도 없는 상대를 음해하려는 투서 정치는 구성원 간의 최소한의 인격적 신뢰마저 붕괴시킵니다. 결국 투서 행위가 반복될수록 동포 사회 내부의 자율적 문제 해결 능력은 저하되고, 외부에 ‘분열되고 성숙하지 못한 공동체’라는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게 됩니다.
한인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무분별한 투서(음해성 고발) 문화’와 함께,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과도한 의전 관행’은 공동체의 발전과 소통을 저해하는 대표적인 요인입니다.
광복절과 같은 기념행사는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전유물이 아니라 한인 공동체 전체가 역사적 기억을 공유하고 화합하는 자리여야 합니다. 한인단체 행사나 모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나친 의전 경쟁(축사 순서, 내빈 소개, 직함 따지기 등)은 공론장의 근본 전제인 ‘구성원 간의 평등성’을 훼손합니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공론장은 참여자의 신분이나 권력이 아니라 ‘더 나은 인식이 갖는 강제력(the unforced force of the better argument)’에 의해 운영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의전 과잉은 참여자 간의 위계를 형성하고, 정작 논의되어야 할 공동체의 주요 의제보다 ‘누가 더 대우받는가’라는 권력의 서열화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이는 리더십이 공공의 봉사가 아닌 권위주의적 지위로 왜곡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번 행사는 단순한 한 단체의 기념식적 행사가 아니라 광복절이라는 명목으로 주류 사회 정치인 및 외교 사절들을 초청한 민간외교적 성격이 더욱 강한, 청소년들을 포함한 많은 한인 단체들이 참여한 전 교포 적 축제 같은 느낌의 행사였습니다. 행사의 성격을 규정하는 식순, 자리 배치 및 프로그램의 구성은 모든 단체가 참여한 준비위원회에서 토의를 거쳐 합의하여 결정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준비위원회는 많은 외국인이 참석하고 어린 청소년들이 참여한 이번 행사에서 단순히 의례적 기념식적 요소보다는 K-Culture 홍보성 프로그램이 광복 80여년이 지난 이 시점에는 적절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습니다. 외국 손님에게도 지루할 수도 있는 의전 과정을 최소한 줄이고 기성세대의 구태의연한 행사 방식이 즐겁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 맞는 새로운 형식의 광복절 행사가 충분히 논의될 수 있는 참신한 시도였다고 생각됩니다. 편협한 의전에의 과잉 집착을 버리고 이런 논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만일 그 결과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합의된 결론에 승복하고 자신의 위치에서 어떻게 도움이 될 것을 고민하는 것이 성숙한 태도였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면, 행사 참여자는 특정 단체장이 지도·훈육해야 하는 피동적 대상이 아닙니다.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현지 정치인, 외국 외교사절, 그리고 행사를 위해 서너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교포 청소년에게 긴 시간의 한국어 축사는 아무런 의미없는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정작 축사를 요구했던 단체장은 자신의 행사를 위해 축사 시간 이후 참여자들이 오랜 시간 준비한 공연도 보지 않고 바 행사장을 떠났습니다. 시간 제한 없는 축사 요구는 그것이 자신의 단체장으로서의 권리라 생각하는 것과 다름 아니고 참여자가 강제로 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곳 북가주 교포들은 선생님의 강의를 들어야 하는 미숙한 학생이 아니라, 널리 자랑할 만한 행사를 조직하고 치러낸 역량과 그 행사의 의미를 스스로 해석할 지적 능력을 충분히 갖춘 능동적 주체입니다. 그분들은 흔한 교포 사회 행사에서 의전적 대우를 요구할 직책을 가지고 계시지는 않지만, 행사에서 소개된 소위 귀빈들보다 더 많은 땀과 시간을 쏟으셨습니다.
한인사회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버마스가 말한 ‘이상적 발화 상황(Ideal Speech Situation)’을 회복해야 합니다. 건강한 이의 제기와 비판은 언제든 환영받아야 하지만, 이는 투서가 아닌 공식적인 회의체와 공개 토론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근거 없는 음해성 투서에 휘둘리지 않는 자정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투서라는 그늘과 의전이라는 껍데기를 벗어던질 때, 한인사회는 비로소 모두가 평등하게 참여하고 합리적으로 소통하는 성숙한 공론장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언론의 보도기사에서 지적된 축사 순서, 발언 시간, 자리 배치 등 과도한 의전(Protocol)을 둘러싼 갈등은 한인 사회와 같은 시민 공동체가 해결해야 할 대표적인 권위주의적 폐해입니다. 광복절 경축식이나 커뮤니티 행사의 본질은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동포사회의 화합과 발전을 도모하며 다음 세대에 정체성을 전수하는 데 있습니다. 의전은 이러한 본래 목적을 다듬고 보조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전과 형식, 발언의 순서나 길이에 집착해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공동체의 대의보다 개인의 상징적 권위나 대우를 우선시함으로써, 행사의 본래 취지를 퇴색시키고 일반 구성원들에게 깊은 실망감과 피로감을 안겨줍니다.
한인사회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투서라는 그늘과 의전이라는 껍데기를 벗어 던지고 모두가 평등하게 참여하고 합리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으로 거듭날 때 우리 북가주 한인 사회는 더욱 성숙한 민주적 사회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각 한인 단체 사이의 지역적 정서적 거리를 극복하고 적극적 참여와 자기희생적 협동으로 마무리한 지난 광복절 행사에서 보여준 단합을 앞으로도 기대해 봅니다.
김지수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