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숙 작가의 살아가는 이야기] 귀신과 함께 사는 여자

친구 아들 결혼식에서 미영이와 함께.
한국 다녀 왔습니다. 뭐 특별한 일이 있어서 간 건 아니고 외국인에 대한 코로나 격리도 없어졌겠다, 3월에 은퇴해서 시간도 많겠다해서 그냥.

‘생선하고 손님은 사흘이면 냄새 난다’는 아버지의 평소 생활신념을 받들어 어디 가면 오래 안 있는 나입니다. 그동안의 한국방문 기간은 딱 일 주일. 그것도 가는 데 하루, 오는 데 하루를 빼고나면 정작 한국에 머무는 시간은 닷새 정도였는데 이번에는 보름을 잡았습니다. 비행기표가 워낙 비싸야지요. 거의 배가 올랐어요. 다락같이 비싼 비행기표 값을 지불하고 갔는데 일 주일만에 오기엔 너무 아깝잖아요. 위에도 말했지만 나는 은퇴한 사람. 남는 게 시간입니다. 느긋하게 친구들도 만나고 관광도(어디 다니는 걸 질색하지만)좀 하리라고 넉넉한 일정을 계획했습니다. 그래서 한국도착해 바로 큰 고모네로 가서 며칠 머무르기로 했어요.

한남동 살다가 작년 겨울에 이사했다는 큰 고모집은 산 바로 밑에 위치한 근사한 전원주택입니다. 벽 한면을 차지한 통창으로 정원을 모두 내려다 볼 수 있는. 거실에 벽난로까지 있는.

약간 치매기가 보이는 고모를 대신해 나랑 두어살 나이 차이 나는 고모 딸, 고종사촌 동생이 살림을 전담하고 있더군요. 잔치집처럼 성대하고 푸짐하게 음식을 차리면서 동생이 말했습니다. 좀 있다가 이모가(손금고모)오실 거야. 언니랑 여기서 하룻밤 자고 간다고 했으니까 그런 줄 알아요.

아이구야, 잘 되었다 싶었습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요. 손금고모집에 안 가도 되잖아요. 거기서 얼굴을 보고나면요.

원래 계획은 고향에 먼저 갔다가 출국 며칠 전에 서울로 올라오면서 손금고모를 보는 거였습니다. 그런데요, 정말로정말로 거기 가기 싫습니다. 팔십노인이 어둑어둑한 지하방에서 혼자 기거하는 꼴을 보기 싫어요. 한때는 날리던 사람의 노년이 너무 초라하고 비루해서요. 마음이 아픕니다.

으음, 솔직히 말해야겠습니다. 그 집에 가기 싫은 이유는 온갖 거지같은 잡동사니들로 꽉 차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호텔방처럼 정갈하고 깨끗하고 반듯한 곳이라야 다리를 뻗는 나는 고모집이 진짜 불편해요. 그 집에서는 물 한 모금도 마시기 싫습니다. 더구나 무당친구와 자면서 괴이한 경험을 했었잖아요. 그 집이 무서워요. 그래서 길게 머물러 봤자 두 시간입니다. 방에 들어가지도 않고 현관과 가까운 거실 한 쪽을 주섬주섬 치우고 잠시 앉았다가 벼락같이 일어나 나와 버려요. 고모는 섭섭해 하지요. 하룻밤 자기는 커녕 차 한 잔을 안 마시고 바람같이 왔다 가버리니.

2년 전, 격리 2주를 무릅쓰고 한국에 나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한 시간 정도 있다가 떠나왔습니다.
그 집을 나오는 순간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습니다. 큰 숙제를 해 치운 기분입니다. 고모 얼굴을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즐겁지만 그 집에 가는 일은 정말로 싫은 일입니다. 그렇게 큰 부담으로 다가와 있던 일이 한 방에 해결되었으니 어찌 내가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2년만에 보는 손금고모와 두릅나물 등 미국에서는 구경도 못할 음식으로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방에 둘이 되었습니다. 몇 년전, 무당친구와 고모네서 하룻밤 잔 이후에 처음으로 밤을 함께하는 시간입니다.

내가 말했습니다. 재작년, 고모가 내 손금을 보면서 ‘큰 돈 들어온다’고 예측했는데 그 말이 맞더라고. 생전 복권도 안 사고 천지사방을 둘러봐도 큰 돈 들어올 일이 없는데 왜 저런 소리를 하나 반신반의했지요. 시어머니로부터 유산 상속받을 일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지요.

나는 미국에 도착한 후 남편으로부터 시어머니의 별세 소식을 들었습니다. 내 한국여행을 망치지 않기 위해 남편은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한국에 있던 그 시간, 고모가 내 손금을 보면서 큰 돈 들어오겠다고 예측하는 순간에 숨을 거둔 겁니다. 고모는 내 손금으로 그 사실을 알아맞춘 거고. 너무너무 신기하지 않습니까. 정말로 고모는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다짜고짜 물었습니다.
“고모집에 혹시 귀신 있어요?”
무당친구와 고모네서 하룻밤 자는데 바람 한 점 샐 틈없이 꽉 닫혀있던 문이 두 번이나 스르르 열렸던 일을 목격한 나였습니다. 친구는 열리는 문을 향해 고개 숙이면서 ‘어서 오세요’ 하고 인사를 했고요. 너무너무 무섭고 공포스런 일이었지만 고모한테 그 일에 대해 상세하게 얘기해 본 적은 없습니다. 왠지 손금고모집에서는 그 이야기를 하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으스스하고 음습한 그 집의 분위기에서는. 어두컴컴한 그 집 한 구석에서 뭔가가 숨어서 나를 지켜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 오싹하고 서늘한 느낌이 있는 데서는 절대 귀신이야기를 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그런데 큰고모네 집이잖아요. 최신식 구조의 창문 넓고 밝고 깨끗한 큰고모네.

내 말에 고모의 눈이 커졌습니다.
“네가 어찌 아노?”
어떻게 알았냐는 말은 귀신이 있다는 말입니다. 한국에 도착한 날 비가 와서 날씨가 추웠습니다. 그래서 동생이 전기장판을 켜주었기에 위에 앉아 있었는데 ‘네가 어찌 아노’ 라는 고모의 말에 갑자기 심한 한기가 들어요. 얼른 이불을 끌어서 온몸을 덮으며 내가 대답했지요. ㅇㅇ와 하룻밤 잘 때 한밤중에 문이 두 번이나 저절로 열렸고 열린 문을 향해 ㅇㅇ가 어서 오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고. 고모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습니다.
“그래. 귀신이 ㅇㅇ랑 같이 놀려고 그 방에 들어 갔구나…” 엄마야! 다시 온 몸에 쫘악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잠깐이라도, 낮에도 그 집에는 가지 않아야겠구나, 생각을 하면서 고모에게 물었어요. 고모야 말로 그 집에 귀신이 있는지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귀신 있는 그 집에서 어떻게 살아요? 더구나 혼자. 안 무서워요?! 고모가 대답했습니다. 지금은 몇 안 남았다고. 귀신이 한 명이 아니라 열 서 너명 쯤 된답니다. 다 쫒아내고 귀신 한 명이 남았는데 질기게 계속 버티고 있대요.

처음 고모가 귀신을 느낀 것은 이사한 후 이틀 째 되는 밤이었다고 합니다. 이삿짐 정리로 새벽까지 있다가 자리에 누웠는데 젊은여자 하나가 옆에 따라 눕더래요. 고모가 놀라서 벌떡 일어나자 그 여자도 같이 따라 일어나면서 히히히, 웃더랍니다. 그제서야 고모가 사방을 둘러보니 천정에도 벽에도 귀신들이 드글드글 하더래요.

나중에 알고보니 그 집은 두 사람의 자살자가 생겼던 집. 오랫동안 비워져 있다가 죽어도 시골에서 못살겠다고 부랴부랴 서울로 올라온 고모한테 걸린 겁니다. 이상하게 전세가가 싸다고 생각했대요. 지하이긴 하나 방 세 개짜리 집이 단돈 4천 만원. 지리도 엄청 좋아요. 서울역 바로 앞이거든요. 집주인이 고모한테 무척 고마워 한답니다. 두 명이나 자살한 집, 세입자가 들어오면 일 년도 못살고 줄행랑을 치는 곳에서 고모가 몇 년을 탈없이 살고 있으니.

고모가 말했습니다. 그 집은 자기같은 사람 아니면 금방 폐가가 될 거라고. 버텨낼 사람이 없답니다. 고모도 처음엔 많이 고전했답니다. 밤마다 귀신들이 괴롭혀서요. 위에도 말했지만 지금은 한 명이 남았는데 말도 못하게 악독하고 질기대요. 바로 그 집에서 자살한 젊은 여성이랍니다. 고모가 잘 달래고 있는 중이라 곧 떠날 거랍니다.

왜 그렇게 귀신들이 많냐는 내 물음에 고모가 말했습니다. 사실은 고모가 살고 있는 그 동네가 옛날부터 귀신들이 많기로 소문난 지역이었다고요. 죄 지어 사형당한 궁중 나인,궁녀,내시들의 시체를 갖다 버리던 곳이었다고. 몇 십년 전만해도 울긋불긋한 깃발을 단 점집들이 즐비했는데 얼마 전부터 개발되면서 그런 집들이 허물어지고 신축건물이 들어서고 있다고.

고모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습니다. 자기는 무당이 되었어야 했다고. 나는 놀라서 고모를 쳐다보았습니다. 나는 그동안 짐작만 했지 한 번도 직접적으로 이에 대해 언급한 적 없습니다. 그런데 고모가 자기 입으로 내게 말해요. 무당이 되었어야 했다고.

사실은 고모의 평소 복장이 예사롭지 않아요. 딱 무당입니다. 무당들이 원색을 좋아하잖아요. 뭐를 주렁주렁 많이 달잖아요. 고모도 그렇습니다. 귀걸이 목걸이 반지 팔찌를 열 개도 넘게 답니다. 옷도 반짝반짝 빛나는 걸 좋아합니다. 색깔은 빨강, 아니면 남색, 초록. 웬만한 사람은 부담스러워 피할 원색. 그날도 가슴까지 내려오는 진주목걸이와 금속 목걸이 두 개에 팔찌 세 개, 그리고 다섯 개의 반지를 끼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브롯치를 서너개 달은 모자까지 썼더군요. 반짝이가 붙은 쟈켓에다 또 반짝이가 달린 블라우스를 입었고요. 한 올 머리카락 내려오는 것도 용서치 않고 뒤로 쫙 빗어 부친 올백 스타일의 머리. 그냥 척 봐도 요상하고 이상한 차림새입니다. 평생을 그러고 다녀서 이제는 특별해 보이지도 않은 고모의 옷차림. 이번에는 내가 물어봤습니다. 왜 그렇게 남의 눈에 뜨이는 차림새를 하냐고. 고모의 대답은 그렇게 해야만 마음이 편하대요. 무당의 복색은 하지 못하더라도 비슷하게 하고 다녀야 편하다고.

우리라면 그런 차림새를 하고 단 한 발자국도 밖에 못 나갈 겁니다. 그런데 그게 편하다니. 고모 말대로 무당의 팔자라서 그런가 보지요. 팔자 땜은 못한다니 진짜 그런가봅니다. 그런데 고모가 말했습니다. 손금보고 관상보고 사주보는 일을 거의 반평생 했지만(기독교 장로인 고모부의 극렬한 반대로 몰래몰래)결국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우리가 구원받는 길은 하나님밖에 없다고. 최근에 성경을 두 번이나 통독하면서 내린 결론이랍니다. 앞으로는 남의 운명을 읽는 일도 가급적 안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번에도 나는 고모에게 손바닥을 내밀어 보려 작정하고 있었더랬습니다. 큰 돈 잃은 일, 큰 돈 들어 올 일, 딸같은 아이가 나타날 일, 내 수술했던 일 등 내 과거와 미래를 손금만으로 정확하게 맞추어 냈던 고모였습니다. 이번에는 또 뭘까, 내심 기대가 컸었거든요. 고모의 말에 나는 내밀려던 손바닥을 슬그머니 거두었습니다.

고모 말대로 우리가 구원받는 길은 하나님밖에 없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가급적 남의 운명 읽는 일을 안 하겠다는 고모의 말을 존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회는 2019 년 12월 1 일에 쓴 ‘ 귀신이 머물던 집’ 후속편입니다. 이번 한국방문에서 그 집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더 들었거든요.


이계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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