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숙 작가의 살아가는 이야기] 내 삶의 마지막에는

재작년, 부산 친구와.
성장 배경이 비슷해서 어릴 때부터 자매처럼 붙어 지낸 친구가 있습니다. 지금도 자주 연락하는. 한국 나가면 아무리 바빠도 반드시 얼굴을 보는. 지난 회 글에 잠깐 언급했던, 부산에 사는 아주 예쁜 친구입니다. 그 친구가 암에 걸렸습니다. 지난번 한국 방문 중 그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더랬습니다. 그녀의 인생을 내가 알거든요. 맨주먹으로 시작해서 얼마나 힘들게, 얼마나 치열하게, 얼마나 노력하며 살았는지를. 지금은 아파트가 세 채입니다. 자상하고 성실한 남편에 엄마라면 껌뻑 죽는 아들 며느리들에다 예쁜 손주까지, 그야말로 고진감래라는 말이 잘 어울렸던 친구입니다. 은퇴를 앞 두고 이제 좀 맘 편하게 살아보겠네 했더니 암 선고. 그것도 생전 듣도보도 못한 암. 다행히 수술 결과가 아주 좋습니다. 항암치료 받으면서 다른 장기로 전이를 하지 않는지 추이를 지켜보는 일만 남았답니다.

현아의 죽음에 대한 내 글을 읽은 친구가 말합니다. ‘계숙이가 두 번 다시는 친구의 죽음으로 애통해하는 글을 쓰지 않도록 열심히, 악착같이 치료 잘 받아서 건강해지겠노라’라고. 내가 대답했어요. 그럼, 그래야지. 그래야하고 말고. 네가 앞으로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나 있는 미국에도 놀러와야 하고 세계일주도 해야하고 둘째 아들 결혼도 시켜야 하잖아. ‘엎어진김에 쉬어가라’는 속담에 따라라. 이번 기회에 여기저기 열어놓았던 사업 다 정리한 후 오로지 치료에만 전념하거라. 누차 말했듯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건 내 건강이야…

아닌게아니라 친구는 남편과 아이들의 극진한 간호를 받으며 생전 처음의 느긋하고 편안한 시간을 가지고 있다고합니다. 문제는 주위사람들입니다. 위로전화, 안부전화, 병문안, 택배가 줄을 잇는답니다. 일일이 대응하기가 부담스럽고 지친답니다. 정이 넘치는 민족이니 오죽하겠어요. 친구는 자기의 상태를 주변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답니다. 관심과 동정과 가십의 대상이 되는 게 싫어서. 그래서 가족들에게 입단속을 시켰는데도 어떻게어떻게 주변사람들에게 알려졌답니다.

지난 5월에 세상을 떠난 현아도 남들의 관심과 동정과 가십의 대상이 되는 게 싫어서 주위에 알리지 않았을 겁니다. 현아가 폐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친구는 나를 비롯해 아주 극소수였습니다. 그래서 영선이는 아직도 자책에 빠져 괴로워합니다. 현아가 병상에 있을 때 찾아가 보지 못했던 것을. 전화나 문자를 좀 더 자주 못했던 것을.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했던 것을. 한편으로는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합니다. 현아랑 나름 많이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왜 자기한테는 말해주지 않았는지. 병을 숨겼는지.

평소 현아와 사이가 안 좋아서 뒤에서 늘 험담을 하던 한 친구 또한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화해할 새도 없이 현아가 떠나버렸으니까. 만약 현아의 상태를 알았으면 먼저 손을 내밀었을지도 모릅니다만 이제는 늦었지요. 그 늦은 걸 알기때문에 그 친구는 후회와 죄책감에 괴로워합니다.

돌이켜보면요. 어쩌면 현아는 자신의 상태를 자세하게 알지 못하고 떠났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폐암이라는 병명은 알았을 테지만 말기의 위중한 상태라는 사실은, 가망이 없는 상태라는 사실은 짐작 못했을 것 같아요. 남편을 비롯한 자녀들이 정확한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을 겁니다. 왜냐면 우리 가족도 그랬었거든요.

오래전 아버지는 간암으로, 엄마는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요. 두 사람은 떠나면서도 자신의 병명이 무엇인지 조차도 몰랐습니다. 아버지에겐 엄마가, 엄마에겐 동생들이 다 숨겼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병명과 상태를 알게되면 비관하고 좌절할 것 같아서 사실대로 말해주지 않았답니다. 약 잘 먹고 밥 잘 먹으면 금방 나을 수 있는 대수롭지 않은 병이라고 거짓말시켰답니다.

아버지의 생명이 몇 달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내 둘째 동생도 말기암 투병중이었는데요. 가족들은 둘째 동생한테까지도 아버지의 병을 숨겼습니다. 물론 위와 같은 이유였지요. 그러니까 충격받아서 동생의 건강이 더 나빠질까봐. 동생에게 아버지의 상태를 알린 건 나였습니다. 엄마도, 둘째 동생의 아내도 나를 원망했습니다만 내 생각은 달랐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게되면 동생의 충격이 오히려 더 크지 않겠어요. 내가 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위해 한국에 부랴부랴 나갔건 것 처럼 둘째 동생도 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는 해야하지 않겠어요.

자신의 병 상태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는 건 기만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본인은 알아야해요. 가슴 아프고 슬프지만 정확하게 알려서 삶을 정리할 시간을 주어야합니다. 미워했던 사람과는 용서하고 화해하고 좋아했던 사람과는 지난 추억을 나누면서 이 세상과 작별할 시간말입니다. 그 귀중한 시간을 단지 충격받고 좌절할 거라는 이유로 빼앗을 권리는 그 누구에도 없습니다. 참 재밌는 것이 한국은 개인의 건강상태에 대한 정보를 배우자에게, 자식들에게, 보호자에게 쉽게 발설합니다. 가족관계만 확인되면 함부로 전달해 줍니다. 정작 본인은 깜깜하고.

미국처럼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국은 본인이 제일 중요하지요. 얼굴에 난 뾰루지 하나에 대한 사소한 결과도 본인에게만 통보합니다. 아주 오래전입니다. 한 할배가 중풍으로 쓰러졌습니다. 목숨에는 상관이 없으나 오랜 기간을 재활치료에 들어가야 한답니다. 그 소식을 듣고 가만 있을 수 있나요. 꽃을 사들고 물어물어 혼자 그 할배가 머물고 있는 요양원을 찾아갔지요. 내가 찾아갔단 소식을 들은 지인들의 성화가 대단합니다. 자기들도 병문안을 가겠답니다. 며칠 후 지인들과 또 그 요양원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할배가 누워있던 병상이 비어 있어요. 상태가 나아져서 다른 곳으로 옮겼답니다. 의사고 간호원이고 접수원이고 할배가 어디로 갔는지 알려주지를 않습니다. 다섯 명이나 되는 인원이 한 시간 가까이 운전해서 문병왔다고, 꼭 얼굴을 봐야한다고 읍소해도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HIPPA(Health Insurance Portability and Accountability Act)에 따른 규칙에 따라야 한다는 기계적인 말만 할 뿐.

HIPPA. 연방정부랑 캘리포니아주가 주관하는 저소득층 건강보험에서 일해서 나도 알지요. HIPPA가 뭔지. 남편과 아내가 같은 집에 살아도 ‘케이스 홀드’가 아내 이름으로 되어 있으면 남편은 그 케이스에 대해 할 수 있는 게, 알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백번 찾아오고 전화해도 소용없어요. 직원들은 무조건 함묵해야합니다. 하다 못해 ‘우편으로 보낸 보험료가 접수되었는지’같은 사소한 정보도 알려 주지 않습니다. 본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 할밖에. 아내가 세상을 떠났을 경우에는 어떡하냐구요. 사망진단서를 첨부해 케이스 홀더 이름을 남편으로 바꾸어달라는 요청서를 보내야합니다. 그것도 금방 안 되어요. 사망진단서가 정확한 것인지 확인을 합니다. 확인하고 바꾸는 데에만 열흘이 걸립니다. 그만큼 개인개인의 건강 정보에 대한 보호가 철저합니다.

아버지, 엄마, 동생을 보내면서, 주위의 친했던 할배들을 하나둘 보내면서 어느날 갑자기 급사하는 게 최상이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심장마비나 차 사고 등으로 본인이 죽는 줄도 모르게 단번에. 왜냐면 죽을 날을 받아놓고 고통에 시달리면서 하루하루 목숨줄을 부지해 나가는 게 너무나 끔찍하게 보였거든요.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전혀 죽을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어느날 갑자기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리는 건 본인한테 얼마나 억울한 일(죽어서 아무것도 모른다쳐도)입니까. 또한 남은 가족한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깁니다. 단 몇 달이라도 시간이 주어지는 게 낫다는 생각습니다, 위에도 썼지만 이별의 시간, 헤어질 준비를 할 시간.

이순신 장군이 적의 화살에 쓰러져 숨을 거두면서 그러셨다지요.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고. 나는 이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군 수장의 죽음을 적들에게 왜 알리겠어요? 오히려 알려질까 쉬쉬하고 감출 판에. 미국에 살아서 다행입니다. 나의 생명이 몇 달 남지 않는 불상사가 생긴다해도 이 사실을 제일 먼저 아는 사람은 나일 테니까. 나는요. 만약 시한부 생명의 상황이 된다면요. 동네방네 알릴 겁니다. 다 소문낼 겁니다. 알려서 모든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은 후 그동안 체면때문에, 자존심때문에, 쑥스러워서 못했던 말들을 다 할 겁니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고마웠다고 말 할 겁니다. 또한 아직도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 있는 몇몇 인간들을 불러들여서 사과요청을 할 겁니다. 사과를 받고 그들을 용서하고 화해하고 싶어요. 그리고 내 애장품들은 주위에 하나하나 나누어줄 겁니다. 죽은 사람 물건은 재수없다는 말도 있으니 죽기 전에, ‘살아 있을 때’ 주어야 하지 않겠어요.

현아는 수목장을 통해 자연으로 돌아갔습니다만 미리 장기기증을 약속한 내 육신의 일부분은 다시 살아나겠지요. 누군가의 눈으로. 누군가의 피부로. 누군가의 신장으로. 그리고 누군가의 심장으로요.


이계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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