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 대리 활동 혐의’ 수미 테리, 미 검찰과 기소유예 합의

1년간 한국 정보당국 접촉 금지 등 조건
정보 전달·고가 선물 수수 사실 인정
27일 재판 앞두고 합의…유죄 판결 피해
수미 테리 전 미국 CIA 분석관. 사진=대한민국 외교부.

한국 정부를 위해 미등록 대리인으로 활동한 혐의로 기소된 한국계 미국인 대북 전문가 수미 테리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분석관이 미 연방검찰과 기소유예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2년 넘게 이어진 형사사건이 유죄 판결 없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커졌다.

미 법무부와 뉴욕 남부연방지검은 13일 맨해튼 연방법원에 제출한 서류를 통해 테리 측과 기소유예약정(DPA)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테리가 앞으로 12개월 동안 합의 조건을 준수하면 검찰은 형사 기소를 최종 취하할 예정이다.

이번 합의에는 테리가 한국 정보당국 관계자와 접촉하지 않고 여행 제한 등 정해진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는 조건이 포함됐다. 테리는 한국 국가정보원 관계자에게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와의 비공개 회의 내용을 전달하고 고가의 선물을 받은 사실도 인정했다.

다만 테리가 이러한 행위의 위법성까지 인정한 것은 아니다. 테리 측은 한국 정부 관계자들과의 교류가 미국의 국익을 위한 정상적인 외교·안보 전문가 활동이었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수미 테리는 지난 2024년 7월 한국 정부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면서 이를 미국 정부에 신고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테리가 2013년부터 2023년까지 한국 정보당국 관계자들과 접촉하면서 정책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한국 정부의 입장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활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검찰이 공개한 공소장에는 테리가 한국 정보기관 관계자들로부터 명품 핸드백과 고급 의류, 고가의 식사 등을 제공받았다는 내용이 담겼다. 검찰은 명품 매장에서 테리와 한국 정보기관 관계자들이 함께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도 증거로 제시했다.

검찰은 테리가 한국 정부에 유리한 정책적 입장을 전달하는 데 도움을 주고, 미국 정부 관계자들과의 접촉 과정에서 얻은 정보를 한국 정보당국에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2022년 당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의 비공개 회의에서 작성한 메모를 한국 정보기관 관계자에게 전달한 사실도 이번 합의 과정에서 확인됐다.

검찰은 테리가 외교·안보 전문가라는 지위를 활용해 한국 정보당국의 활동을 지원하면서도 외국 정부를 위한 대리인 활동을 신고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반면 테리 측은 대북정책 전문가로서 한국 측 관계자들과 정보를 교환한 것이 불법적인 대리 활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반박해 왔다.

테리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관련 업무를 수행했으며, 이후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 등으로 활동한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다. 북한 문제와 동아시아 안보 정책에 관한 연구와 언론 활동을 이어왔으며 탈북민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 제작에도 참여했다.

당초 테리에 대한 배심원 재판은 오는 27일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재판을 약 2주 앞두고 검찰과 변호인단이 합의에 도달하면서 공개 법정에서 혐의의 유무를 다투는 절차는 사실상 중단됐다.

뉴욕 남부연방지검은 법원에 제출한 서한에서 이번 합의가 미국 정부와 테리 양측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기소유예를 결정한 구체적인 이유나 검찰의 판단이 달라진 배경은 공개하지 않았다.

테리의 변호인 리 월로스키는 합의 결과에 만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테리가 오랫동안 미국을 위해 성실하게 봉사해 왔다며 한국 정부 관계자들과의 교류 역시 북한과 동아시아 문제를 다루는 전문가로서 미국의 국익을 증진하기 위한 활동이었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은 미국 내 외국 정부의 영향력 행사와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활동 범위를 둘러싼 논란을 불러왔다. 특히 미국의 주요 정책연구기관에서 활동하는 전문가와 외국 정보기관의 접촉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를 둘러싸고 관심이 집중됐다.

미국의 외국대리인등록법은 일정한 요건에 해당하는 외국 정부나 외국 주체의 대리 활동에 대해 등록과 관련 정보 공개를 요구한다. 다만 외국 정부 관계자와 접촉하거나 정책 의견을 교환했다는 사실만으로 자동으로 법 위반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합의는 테리가 특정 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하는 대신 형사재판과 유죄 판결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러나 기소유예는 무죄 판결과 다르며, 테리가 합의 조건을 위반할 경우 검찰이 형사절차를 재개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향후 1년간 테리의 합의 조건 이행 여부에 따라 공소의 최종 취하가 결정될 전망이다.



최정현 기자 / choi@baynews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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