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울려 퍼진 야구장…오클랜드 볼러스, ‘K팝 특별 테마 경기’로 라이몬디 파크 달궜다

‘K팝 데몬 헌터스’ 패러디한 K팝 특별 테마 경기
루미·‘골든’·K팝 퀴즈·댄스 공연 등 K팝 콘텐츠 가득
모데스토에 패했지만 승부를 넘어선 ‘K팝 야구축제’

오클랜드 볼러스 홈경기에서 펼쳐진 K팝 테마 이벤트 데이에서 경기 중간 펼쳐진 K팝 댄스 공연.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는 'K팝 업(K-Pop Up) 댄스팀'.
한국에서 출발해 세계적인 대중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은 K팝이 미국 독립 프로야구 경기장의 메인 테마가 됐다. 오클랜드 독립 프로야구팀 오클랜드 볼러스는 지난 8월 23일 오클랜드 라이몬디 파크에서 열린 모데스토 로드스터스와의 홈경기를 ‘K팝 데몬 번터스(K-Pop Demon Bunters)’라는 특별 테마 경기로 치렀다.

단순히 경기 중 K팝 몇 곡을 틀어주는 수준의 행사가 아니었다. 경기 전부터 이닝 교대 시간까지 K팝 공연과 음악, 퀴즈, 댄스 이벤트를 촘촘하게 배치했고, 특히 세계적인 흥행작 ‘K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를 연상시키는 캐릭터와 음악을 적극 활용해 경기장 전체를 하나의 K팝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만들었다.

행사 이름부터 야구와 K팝의 결합을 보여줬다. ‘K팝 데몬 번터스’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의 제목에서 ‘헌터스’를 야구에서 번트를 시도하는 타자를 뜻하는 ‘번터스’로 바꾼 패러디 형식의 이름이다. 영화의 세계관을 그대로 재현하는 공식 행사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친숙해진 작품의 이름과 K팝 이미지를 야구 특유의 유머와 결합한 볼러스식 프로모션이었다.

볼러스 구단은 이날 경기에서 매 이닝마다 다양한 K팝 콘텐츠와 관중 참여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K팝 분위기는 경기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달아올랐다. 1회 이닝 교대 시간에는 ‘스크래피의 빅 인트로-루미’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스크래피는 오클랜드 볼러스의 주머니쥐 마스코트이며, 루미는 ‘K팝 데몬 헌터스’의 중심인물이다.

루미는 미라, 조이와 함께 작품 속 걸그룹 헌트릭스를 이끄는 리더로 등장한다. 구단이 현장 프로그램에 ‘루미’라는 이름을 직접 명시했다는 점에서 이날 행사가 일반적인 ‘K팝 데이’를 넘어 ‘K팝 데몬 헌터스’를 주요 모티브로 삼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회가 끝난 뒤에는 관중석에서 ‘라면 먹기 대회’가 열렸다. 야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중 참여형 이벤트에 아시아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결합한 프로그램이었다. 참가자들은 관중들의 응원을 받으며 라면 먹기 경쟁을 펼쳤고, 가족 단위 관중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다.
라면 누가 많이 먹나로 승부를 가리는 '라면 먹기 대회'. 한국을 대표하는 컵라면을 먹는 팬들이 참여하는 코너.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는 'K팝 업(K-Pop Up) 댄스팀' 공연 모습.
행사의 K팝 색깔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것은 3회였다. 3회 중간에는 ‘K팝 팝업 공연’이 펼쳐졌다. 짧은 이닝 교대 시간을 활용해 야구장 안에서 K팝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라이몬디 파크의 분위기를 잠시 K팝 공연장으로 바꿔놓았다.

3회 종료 뒤에는 ‘K팝 그룹 맞히기’가 이어졌다. 음악이나 관련 단서를 통해 관중들이 어떤 K팝 그룹인지 맞히는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미국 프로스포츠 경기장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노래 제목 맞히기’나 ‘가수 맞히기’를 K팝 콘텐츠로 바꿔 놓은 형식이었다.

볼러스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관중들을 단순히 K팝 음악을 듣는 청중으로 두지 않고, 직접 K팝 그룹을 맞히며 행사에 참여하도록 했다. K팝 팬은 물론 K팝에 익숙하지 않은 야구팬들까지 자연스럽게 콘텐츠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구성도 눈길을 끌었다.

이날 K팝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는 4회 종료 뒤였다. 볼러스의 댄스팀 ‘새스 스쿼드’가 ‘골든’에 맞춰 특별 공연을 펼쳤다. 새스 스쿼드는 50세 이상 멤버들로 구성된 오클랜드 볼러스의 댄스팀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K팝 음악에 맞춰 50세 이상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댄스팀이 춤을 선보였다는 점에서도 색다른 장면이었다.

특히 공연곡으로 선택된 ‘골든’은 이날 테마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음악이었다. ‘골든’은 ‘K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하는 걸그룹 헌트릭스의 대표곡으로, 작품의 흥행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이날 라이몬디 파크에서는 새스 스쿼드가 수천 명의 야구팬 앞에서 ‘골든’에 맞춰 춤을 선보이며 K팝과 미국 지역 스포츠 문화가 어우러진 독특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세대와 문화적 배경을 넘어 K팝 음악을 함께 즐기는 모습은 이날 행사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행사 이름에서 시작해 루미의 등장, K팝 공연과 K팝 그룹 맞히기, ‘골든’ 특별공연까지 이어지면서 ‘K팝 데몬 헌터스’를 중심으로 한 테마가 경기 전반을 관통했다.

4회 중간에는 스크래피가 직접 참여하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형식의 게임도 그라운드에서 진행됐다. 현장 프로그램에는 ‘스크래피 빨간불, 초록불’로 표기된 행사로, 마스코트와 참가자들이 함께 그라운드를 활용해 게임을 펼치며 어린이와 가족 관중들의 호응을 끌어냈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되며 큰 인기를 끌었던 '오징어게임'에 나오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K팝 그룹 이름 맞추기 게임 모습.
K팝 프로그램 사이에는 볼러스 특유의 야구장 엔터테인먼트도 이어졌다. 5회 중간에는 ‘핫도그 던지기’가 진행됐고, 5회 종료 뒤에는 두 명의 참가자가 대형 공기주입식 장비를 착용하고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노커볼 녹아웃’이 펼쳐졌다.

모든 프로그램을 K팝으로만 채우기보다는 볼러스가 평소 진행해온 관중 참여형 이벤트를 K팝 콘텐츠 사이에 적절히 배치해 경기의 흐름을 유지하고 다양한 연령대의 관중이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경기 후반에도 흥겨운 분위기는 계속됐다. 구단 마스코트 스크래피와 관중들이 춤으로 경쟁하는 형식의 ‘스크래피 댄스 대결’이 펼쳐져 K팝을 중심으로 꾸며진 이날 행사의 분위기를 경기 후반까지 이어갔다.

K팝의 핵심 콘텐츠 가운데 하나가 음악뿐 아니라 안무와 이를 따라 하는 댄스 챌린지라는 점을 고려하면, 관중이 직접 몸을 움직이고 춤을 추도록 한 댄스 대결은 이날 행사와도 잘 어울리는 프로그램이었다.

이처럼 이날 경기에서는 ‘K팝 데몬 번터스’를 주제로, 루미를 활용한 스크래피의 등장부터 K팝 공연, K팝 그룹 맞히기, ‘골든’ 특별공연, 댄스 대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K팝 콘텐츠가 경기 초반부터 중반, 후반까지 이어졌다.

특히 3회와 4회 사이에 K팝 팝업 공연과 K팝 그룹 맞히기, ‘골든’ 공연을 연이어 배치한 점도 눈길을 끌었다. 야구 경기에서 발생하는 이닝 교대 시간을 단순한 휴식시간이 아니라 공연과 관중 참여형 콘텐츠가 이어지는 또 하나의 무대로 활용한 셈이다.
이날 열린 K팝 데몬 번터스 이벤트를 위해 오클랜드 볼러스 구단이 팬들에게 나눠준 부채. 부채를 들고 있는 관객은 오클랜드 볼러스 감독인 애런 마일스의 어머니인 프랜 마일스.
> ‘K팝 데몬 번터스’는 볼러스가 일요일 홈경기를 중심으로 운영하는 가족 친화형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구단은 일요일마다 가족 관중을 겨냥한 다양한 테마의 홈경기를 마련하고 있으며, 8월 23일에는 K팝을 주요 콘텐츠로 선택했다.

특히 이날 행사가 주목되는 것은 한인사회가 주최하는 전통적인 ‘한국 문화의 날’ 행사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다.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해 한인단체가 별도로 기획한 행사가 아니라 미국 현지 프로스포츠 구단이 관중을 끌어들이기 위한 주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로 K팝을 직접 선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더욱이 단순히 유명 K팝 가수들의 음악을 경기장에서 틀어주는 차원을 넘어 미국 어린이와 가족들에게까지 폭넓은 인기를 얻은 ‘K팝 데몬 헌터스’의 캐릭터와 음악, 이미지를 경기 프로그램 전반에 녹여냈다.

이는 K팝이 이제 미국에서 특정 팬층이 소비하는 외국 음악 장르를 넘어 가족 단위 스포츠 관중들도 자연스럽게 접하고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대중문화 코드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프로야구 구단의 마스코트가 루미를 소재로 등장하고, 50세 이상으로 구성된 현지 댄스팀이 수천 명의 야구팬 앞에서 ‘골든’에 맞춰 춤을 추며, 관중들이 이닝 사이 K팝 그룹의 이름을 맞히는 모습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미국 야구장에서 쉽게 보기 어려웠던 풍경이다.
K팝 음악에 맞춰 팬들의 응원을 리드하고 있는 오클랜드 볼러스의 마스코트 스크래피.
이날 이벤트오 초청된 이정후 팬클럼 후리건즈 설립자 중 한 명인 나탈리 지.
그라운드에서도 팬들에게는 쉴 틈 없는 경기가 펼쳐졌다. 오클랜드 볼러스는 이날 모데스토 로드스터스를 상대로 양 팀 합계 32점이 나온 난타전을 벌였다.

경기 초반 모데스토가 9-2까지 크게 앞섰지만 볼러스는 끈질긴 추격전을 펼쳤다. 5회초 다시 12-5로 뒤졌던 오클랜드는 5회말부터 점수 차를 줄였고, 7회 12-12 동점을 만든 뒤 8회말 한 점을 추가해 13-12로 경기를 뒤집었다.

그러나 9회초 승부가 다시 뒤집혔다. 모데스토가 오클랜드 불펜을 상대로 두 개의 3점 홈런을 터뜨리며 한 이닝에 6점을 뽑아냈고, 볼러스는 9회말 한 점을 만회하는 데 그치면서 결국 14-18로 패했다.

경기에서는 아쉬운 패배를 기록했지만 이날 라이몬디 파크의 또 하나의 주인공은 분명 K팝이었다.

볼러스는 ‘헌터스’를 야구 용어인 ‘번터스’로 바꾼 행사명부터 루미, ‘골든’, K팝 그룹 맞히기, K팝 퍼포먼스, 댄스 대결까지 야구와 K팝을 경기 내내 교차시키며 승패를 넘어 관중들이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오클랜드 볼러스의 ‘K팝 데몬 번터스’는 단순한 테마 경기를 넘어 K팝이 미국 대중문화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얼마나 넓어졌는지를 보여준 행사였다.

한국에서 시작된 K팝이 음악 차트를 넘어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춤과 게임으로 확장되고, 이제는 미국 지역 프로스포츠 구단이 가족 관중을 경기장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선택하는 대중적인 문화 콘텐츠로까지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라이몬디 파크의 야구 한 경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오클랜드 볼러스 경기 모습.
오클랜드 볼러스 경기 모습.
오클랜드 볼러스 경기 모습.
베이 지역인 앤티오크 출신으로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던 애런 마일즈 오클랜드 볼러스 감독. 애런 마일즈는 2006년 세인트 루이스 카디널스 소속으로 월드시리즈에서도 우승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한편, 이 같은 볼러스의 적극적인 팬 마케팅과 프로모션에는 올해 새롭게 팀을 이끌게 된 예샤야 골드파브 사장의 역할도 크다. 골드파브는 2026년 오클랜드 볼러스의 첫 사장으로 취임해 티켓 판매와 스폰서십, 구단 상품, 경기장 운영 등 비즈니스 부문과 함께 테마 경기와 이닝 사이 이벤트 등 팬들이 직접 즐길 수 있는 프로모션 강화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골드파브는 볼러스에 합류하기 전 약 25년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근무하며 마이너리그 운영과 선수 육성, 야구 분석 분야를 거쳐 야구 자원 및 개발 담당 부사장까지 지낸 베테랑 야구인이다. 자이언츠에서 쌓은 메이저리그 구단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와 밀착한 독립 프로야구만의 새로운 팬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이번 ‘K팝 데몬 번터스’ 역시 음악과 공연, 관중 참여 프로그램을 결합해 라이몬디 파크를 단순히 야구를 보는 공간을 넘어 다양한 세대가 함께 즐기는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만들려는 볼러스의 전략을 보여준 행사였다.


글·사진=최정현 기자 / choi@baynews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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