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창원대 조사단 “독립운동·위안부 기억 한 공간에 공존”
문경희 교수 “한국에서도 보기 드문 특별한 역사교육 공간”
김한일 회장 “위안부 기림비 건립에 한인사회 정성 모였다”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희생, 그리고 일제에 의해 인권을 유린당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을 한 공간에서 함께 기억하고 기리는 샌프란시스코 한인회관이 국내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특별한 ‘역사 기억공간’으로 주목받았다.
지난 8월 16일 샌프란시스코 한인회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후손 환영행사에 참석한 국립창원대학교 한인디아스포라발굴조사단은 회관 곳곳에 조성된 독립운동가 기념 공간과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 축소 모형을 둘러본 뒤, 서로 다른 듯 보이는 두 역사가 한 공간에서 함께 기억되고 있다는 점에 깊은 의미를 부여했다. 이날 조사단에서는 문경희 교수와 김주용 창원대 박물관 학예연구실장, 민경택 학예연구원, 장찬영 연구원 등이 참석했다.
특히 문경희 교수는 한인회관에서 받은 인상을 소개하며 “한국에서도 이렇게 독립운동지사들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같이 공존하는 공간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독립운동사를 기리는 공간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은 각각 존재하지만, 두 역사를 하나의 장소에서 함께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 전하는 사례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문 교수는 “이 공간에서 그걸 같이 보게 돼 굉장히 감동을 받았다”며 “이 자리에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조사단이 현장에서 확인한 샌프란시스코 한인회관은 일제강점기 국권회복을 위해 싸웠던 독립운동가들의 역사와 식민지·전쟁 과정에서 일본군에 의해 인권을 유린당한 피해자들의 역사를 동시에 기억하는 사실상 유일무이한 역사교육 공간이라는 평가다.
지난 8월 16일 샌프란시스코 한인회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후손 환영행사에 참석한 국립창원대학교 한인디아스포라발굴조사단은 회관 곳곳에 조성된 독립운동가 기념 공간과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 축소 모형을 둘러본 뒤, 서로 다른 듯 보이는 두 역사가 한 공간에서 함께 기억되고 있다는 점에 깊은 의미를 부여했다. 이날 조사단에서는 문경희 교수와 김주용 창원대 박물관 학예연구실장, 민경택 학예연구원, 장찬영 연구원 등이 참석했다.
특히 문경희 교수는 한인회관에서 받은 인상을 소개하며 “한국에서도 이렇게 독립운동지사들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같이 공존하는 공간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독립운동사를 기리는 공간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은 각각 존재하지만, 두 역사를 하나의 장소에서 함께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 전하는 사례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문 교수는 “이 공간에서 그걸 같이 보게 돼 굉장히 감동을 받았다”며 “이 자리에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조사단이 현장에서 확인한 샌프란시스코 한인회관은 일제강점기 국권회복을 위해 싸웠던 독립운동가들의 역사와 식민지·전쟁 과정에서 일본군에 의해 인권을 유린당한 피해자들의 역사를 동시에 기억하는 사실상 유일무이한 역사교육 공간이라는 평가다.
현재 샌프란시스코 한인회관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을 비롯해 이대위 목사, 유일한 박사 등 미주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의 흉상과 역사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장인환·전명운 의사의 의거를 비롯해 샌프란시스코와 북가주를 중심으로 전개됐던 미주 독립운동의 역사를 알리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여기에 지난 2017년 샌프란시스코 세인트 메리스 스퀘어에 건립된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의 축소 모형이 한인회관 입구에 설치돼 있다. 축소 모형 아래에는 기림비 건립에 힘을 보탠 후원자들의 이름도 함께 새겨져 있어, 피해자들의 역사뿐 아니라 이를 기억하기 위해 힘을 모았던 한인사회의 노력도 함께 기록하고 있다.
문 교수에게 이 공간이 더욱 특별했던 것은 조사단의 연구 영역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국립창원대 한인디아스포라발굴조사단은 하와이 초기 한인 이민자들의 묘비 조사에서 출발해 미주 독립운동사와 재외동포들의 삶을 추적하고 있다. 문 교수 연구팀은 이와 함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억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전개돼 온 시민운동과 기념사업도 연구하고 있다.
문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더 이상 생존하지 않는 시대에 우리가 어떤 기억을 만들어 함께 기억하고 기념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며 해외에서 이뤄지는 관련 활동과 기록을 수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샌프란시스코 방문 기간에는 세인트 메리스 스퀘어에 세워진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도 직접 찾아 그 의미를 살펴봤다.
김한일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한인회장도 조사단의 설명에 답하며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가 몇몇 개인이나 단체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정말 많은 한인들의 참여와 정성이 모여 탄생한 결과라는 점을 강조했다.
북가주 한인사회에서는 2016년 김한일 회장이 대표로 있던 김진덕·정경식재단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건립기금 모금운동이 진행됐으며, 캠페인을 시작한 지 불과 10일 만에 10만 달러가 모일 정도로 호응이 컸다. 한국학교 학생들부터 노인회 어르신들까지 세대를 가리지 않고 성금이 이어졌다.
특히 김 회장은 거액의 기부 못지않게 많은 사람이 참여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당시 한국학교 학생들은 1달러, 5달러, 10달러씩 정성껏 모은 돈을 기림비 건립기금으로 보내왔다. 김 회장은 학생들에게 액수보다 자신들도 기림비 건립에 직접 참여했다는 경험과 주인의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지난 2017년 샌프란시스코 세인트 메리스 스퀘어에 건립된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의 축소 모형이 한인회관 입구에 설치돼 있다. 축소 모형 아래에는 기림비 건립에 힘을 보탠 후원자들의 이름도 함께 새겨져 있어, 피해자들의 역사뿐 아니라 이를 기억하기 위해 힘을 모았던 한인사회의 노력도 함께 기록하고 있다.
문 교수에게 이 공간이 더욱 특별했던 것은 조사단의 연구 영역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국립창원대 한인디아스포라발굴조사단은 하와이 초기 한인 이민자들의 묘비 조사에서 출발해 미주 독립운동사와 재외동포들의 삶을 추적하고 있다. 문 교수 연구팀은 이와 함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억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전개돼 온 시민운동과 기념사업도 연구하고 있다.
문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더 이상 생존하지 않는 시대에 우리가 어떤 기억을 만들어 함께 기억하고 기념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며 해외에서 이뤄지는 관련 활동과 기록을 수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샌프란시스코 방문 기간에는 세인트 메리스 스퀘어에 세워진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도 직접 찾아 그 의미를 살펴봤다.
김한일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한인회장도 조사단의 설명에 답하며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가 몇몇 개인이나 단체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정말 많은 한인들의 참여와 정성이 모여 탄생한 결과라는 점을 강조했다.
북가주 한인사회에서는 2016년 김한일 회장이 대표로 있던 김진덕·정경식재단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건립기금 모금운동이 진행됐으며, 캠페인을 시작한 지 불과 10일 만에 10만 달러가 모일 정도로 호응이 컸다. 한국학교 학생들부터 노인회 어르신들까지 세대를 가리지 않고 성금이 이어졌다.
특히 김 회장은 거액의 기부 못지않게 많은 사람이 참여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당시 한국학교 학생들은 1달러, 5달러, 10달러씩 정성껏 모은 돈을 기림비 건립기금으로 보내왔다. 김 회장은 학생들에게 액수보다 자신들도 기림비 건립에 직접 참여했다는 경험과 주인의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샌프란시스코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 건립은 한인사회만의 운동에도 머물지 않았다. 중국계 커뮤니티가 먼저 시작한 기림비 건립 움직임에 한국을 비롯해 필리핀 등 피해 당사자 커뮤니티와 인권단체들이 합류하면서 모두 13개 커뮤니티가 연대했다. 2015년 9월 샌프란시스코 시의회에서 기림비 건립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된 뒤 한인사회도 본격적으로 건립운동에 참여했고, 2017년 9월 22일 세인트 메리스 스퀘어에서 기림비가 제막됐다.
지난 1월 샌프란시스코를 찾은 전남학생공공외교스쿨 학생들에게도 김 회장은 기림비가 한국만의 역사를 다루는 조형물이 아니라 일본군에 의한 성노예 피해를 입은 여러 커뮤니티가 함께 세운 인권의 상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여성 인권과 인간 존엄의 가치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이 기림비가 존재하는 중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한인디아스포라발굴조사단의 활동 역시 ‘잊힌 사람을 다시 역사 속으로 불러내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한인회관이 지향하는 역할과 맞닿아 있다.
김주용 실장은 조사단이 하와이에서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던 초기 한인 이민자들의 묘비를 조사하면서 연구가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개인의 묘비에 불과해 보였지만 당시 신문과 독립운동 자료, 각종 기록을 하나씩 대조해 나가면서 묘비 속 인물들이 조국 독립을 위해 독립자금을 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조사단은 지금까지 약 1,600기에 달하는 미주 한인 1세대 묘비를 확인했으며, 이 과정에서 끊겼던 후손들을 다시 찾아 조상의 묘소와 연결해주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묘비와 각종 역사자료를 토대로 아직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를 발굴해 국가보훈부에 관련 자료를 제출하고 독립유공자 서훈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활동도 펼치고 있다.
하와이에서 시작된 조사 범위는 이제 샌프란시스코와 리들리,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본토로 확대되고 있다. 조사단은 하와이 마우이의 100년 된 타임캡슐에서 발견된 한인학교 기부자 명단 등을 바탕으로 당시 한인들의 이동 경로와 독립운동 네트워크를 추적하고 있다.
이날 한인회관을 찾은 조사단이 주목한 것도 결국 ‘기억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라는 문제였다. 이름 없이 묻혀 있던 초기 한인 이민자와 독립운동가들을 묘비와 기록을 통해 다시 찾아내는 작업, 생존 피해자가 점차 사라지는 시대에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를 기림비와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은 모두 과거의 역사를 현재와 미래로 연결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독립운동가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는 흉상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고통과 용기를 상징하는 기림비가 한 공간에 자리한 샌프란시스코 한인회관은 단순한 한인단체의 회관을 넘어선다.
독립을 위해 싸웠던 사람들, 일제의 전쟁범죄로 고통받았던 피해자들, 그리고 이들을 잊지 않기 위해 수십 년 동안 기록을 찾아내고 기념비를 세워온 재외동포들의 노력이 한곳에 축적된 ‘살아있는 역사교육 공간’인 셈이다.
문경희 교수와 조사단이 샌프란시스코 한인회관에서 받은 감동은 바로 그 지점에 있었다. 서로 분리해서 기억돼 왔던 독립운동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의 역사가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하나의 공간에서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억을 지켜온 중심에는 고국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도 역사를 잊지 않으려 했던 재외동포들이 있었다.
지난 1월 샌프란시스코를 찾은 전남학생공공외교스쿨 학생들에게도 김 회장은 기림비가 한국만의 역사를 다루는 조형물이 아니라 일본군에 의한 성노예 피해를 입은 여러 커뮤니티가 함께 세운 인권의 상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여성 인권과 인간 존엄의 가치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이 기림비가 존재하는 중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한인디아스포라발굴조사단의 활동 역시 ‘잊힌 사람을 다시 역사 속으로 불러내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한인회관이 지향하는 역할과 맞닿아 있다.
김주용 실장은 조사단이 하와이에서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던 초기 한인 이민자들의 묘비를 조사하면서 연구가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개인의 묘비에 불과해 보였지만 당시 신문과 독립운동 자료, 각종 기록을 하나씩 대조해 나가면서 묘비 속 인물들이 조국 독립을 위해 독립자금을 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조사단은 지금까지 약 1,600기에 달하는 미주 한인 1세대 묘비를 확인했으며, 이 과정에서 끊겼던 후손들을 다시 찾아 조상의 묘소와 연결해주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묘비와 각종 역사자료를 토대로 아직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를 발굴해 국가보훈부에 관련 자료를 제출하고 독립유공자 서훈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활동도 펼치고 있다.
하와이에서 시작된 조사 범위는 이제 샌프란시스코와 리들리,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본토로 확대되고 있다. 조사단은 하와이 마우이의 100년 된 타임캡슐에서 발견된 한인학교 기부자 명단 등을 바탕으로 당시 한인들의 이동 경로와 독립운동 네트워크를 추적하고 있다.
이날 한인회관을 찾은 조사단이 주목한 것도 결국 ‘기억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라는 문제였다. 이름 없이 묻혀 있던 초기 한인 이민자와 독립운동가들을 묘비와 기록을 통해 다시 찾아내는 작업, 생존 피해자가 점차 사라지는 시대에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를 기림비와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은 모두 과거의 역사를 현재와 미래로 연결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독립운동가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는 흉상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고통과 용기를 상징하는 기림비가 한 공간에 자리한 샌프란시스코 한인회관은 단순한 한인단체의 회관을 넘어선다.
독립을 위해 싸웠던 사람들, 일제의 전쟁범죄로 고통받았던 피해자들, 그리고 이들을 잊지 않기 위해 수십 년 동안 기록을 찾아내고 기념비를 세워온 재외동포들의 노력이 한곳에 축적된 ‘살아있는 역사교육 공간’인 셈이다.
문경희 교수와 조사단이 샌프란시스코 한인회관에서 받은 감동은 바로 그 지점에 있었다. 서로 분리해서 기억돼 왔던 독립운동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의 역사가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하나의 공간에서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억을 지켜온 중심에는 고국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도 역사를 잊지 않으려 했던 재외동포들이 있었다.



